[최소한의 주식 공부 35] 주식, 공부한다고 돈이 됩니까?

주식 투자자가 알아야 할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지식을 담아 ‘최소한의 주식 공부’를 연재합니다. 주식이라는 자산의 근본적인 실체에서 시작해, 의사결정의 주요 원칙과 피해야 할 함정에 대해 홍진채 라쿤자산운용 대표가 독자 여러분과 함께 고민합니다. ― 버핏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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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대(大) 주식의 시대’입니다. 온 국민이 주식으로 돈을 벌고 있습니다. 말도 안 되게 늘어난 부를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할 정도입니다.

저는 국민들이 부동산보다는 금융상품을 통해 재산을 증식하는 게 더 건강한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한 번에 목돈을 투입해야 하는 부동산은 가격이 높아져도 현금화하기가 어렵고, 현금화한 다음에는 다시 부동산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아서, 실물 경제로 흘러가기가 어렵습니다. 한국인의 ‘부의 효과’, 즉 자산 가치 증가로 인하여 소비가 늘어나는 경향은 전 세계 대비 매우 낮은 편입니다. 반면에 주식 같은 금융상품은 현금화하기가 쉽고, 언제든 다시 살 수 있기 때문에, 가격 상승이 소비 증대로 이어지고, 이는 ‘기업의 실적 증가 → 기업의 가치 상승 → 주식 가격 상승’이라는 선순환이 이루어지는 토대가 됩니다.

한편 주식의 전반적인 급등세는 막대한 심리적 피로를 유발합니다. 단지 주식이 없어서 생기는 피로감뿐만 아니라, 주식이 있더라도, 열심히 주식을 ‘공부’해서 투자한 나보다 옆자리에서 별생각 없이 ‘딸깍’ 주식을 사서 돈을 더 많이 버는 사람으로 인한 피로감도 큽니다.

부동산의 전반적인 상승 또한 피로감을 유발하지만 그 정도가 다릅니다. 부동산은 1) 목돈이 들어가고, 2) 거래하기가 어렵고, 3) 대부분 비슷한 수준의 레버리지를 끼고 들어가기 때문에,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옆자리의 누군가가 돈을 벌었을 때에는 (주식보다는 상대적으로) 어느 정도의 노고를 인정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적어도 수억 원의 돈을 태워야 하니 (대단한 자산가를 제외하고는) 누구나 신중하게 고민하고, 실제 물건을 둘러보고, 여러 거래 조건을 검토하고, 관련 전문가를 대동하고 거래에 임합니다. 부동산으로 돈을 벌었을 때에는 “그래, 그렇게 신중하게 검토한 끝에 용기 있게 내린 결정이라 이렇게 돈을 번 거야”라고 받아들이고, 혹여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더라도 전반적인 경기 침체나 지역 상권 몰락 등 외부에 기인할 수 있는 요소가 존재하게 마련이고 “안 되면 들어가서 살지 뭐”라는 식의 방어가 가능합니다.

주식은 몇 달을 고민해서 사든, 오늘 점심을 먹다가 귀동냥으로 들은 주식을 사든, ‘딸깍’ 한 번으로 이루어집니다. 부동산보다 ‘쉽게 사고 팔 수 있다’라는 게 주식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는’ 주식을 쉽게 사고, ‘그중 일부는’ 돈을 법니다.

잘 아시는 ‘생존 편향’이 여기서도 작동합니다. 강세장에서는 많은 사람이 돈을 법니다. 공부한 사람도 돈을 벌고 공부 안 한 사람도 돈을 법니다. 그 와중에 손해를 보는 사람도 있지만, 손해를 본 사람은 조용히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습니다. (요새는 인버스 상품이 하도 많아서, 강세장에 인버스에 베팅했다가 손해 보는 사람들이 조금 다른 의미로 주목받기는 합니다만.) 그러므로 필연적으로 ‘돈을 번 사람’ 중에는 ‘쉽게 매수한 사람’이 있고, 열심히 공부한 사람일수록 이에 대한 자괴감을 느끼게 됩니다. 결과가 동일하다면 인풋이 적었던 사람이 승자니까요.

이 자괴감을 더 심화시키는 건 레버리지입니다. 부동산은 대출 규제가 촘촘하게 있어서, 특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최대한 끌어올 수 있는 레버리지가 크지 않습니다. (옛날에는 ‘갭 투자’가 유행하기도 했지만, 이는 최근 몇 년간 집중 규제하는 대상이기도 하고, 갭 투자를 수십 채 하는 사람은 소수니까 논의 대상이 아닙니다.)

주식은 레버리지 ETF가 존재하고, 그 이전에도 선물옵션 등으로 레버리지를 일으키기 용이했습니다. 특히 요즘 부각되는 레버리지 ETF는 개인의 신용을 잠식하지 않기 때문에, 누구든 ‘용기’를 내기만 한다면 ‘딸깍’으로 몇 배의 레버리지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하이닉스 없는 사람은 하이닉스 산 사람 때문에 FOMO가 오고, 하이닉스를 가진 사람은 몰빵하지 않아서 FOMO가 오고, 하이닉스에 몰빵한 사람은 레버리지를 끼지 않아서 FOMO가 온다”라는 이야기가 한동안 유행했었죠.

사람은 범접할 수 없는 사람이 가진 것에 대해서는 의외로 질투나 분노를 크게 느끼지 않습니다. 내 옆자리의, 나와 같은 처지에 있던 사람이 ‘딸깍’ 하는 손쉬운 선택으로 나와는 ‘자릿수’가 다른 부를 순식간에 축적했을 때 느껴지는 질투와 분노는 ‘재벌의 비리’ 등보다 훨씬 큽니다.

특히나, 오랫동안 주식을 공부해온 나보다, “야, 요즘 반도체 좋다는데 나도 주식 좀 사볼까? 주식은 야수의 심장으로 하는 거지, 히히” 하면서 단일 종목 레버리지를 ‘딸깍’ 사버린 친구가 확 돈을 벌고서는 “야, 주식 쉽네. 너는 왜 그렇게 어렵게 하냐?” 이럴 때 느끼는 당혹감과 수치심은 다른 분야에서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흔히들 주식은 위험하고, 제대로 공부하고 신중하게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요즘 같은 세태에서는 과연 열심히 공부한다고 좋은 수익을 낼 수 있는지 심하게 의구심이 생기고는 합니다. 오늘은 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네, 지금까지 서론이었습니다.)

‘좋은 수익’이 무엇인가?

주식으로 돈을 벌었다고 표현할 때 ‘얼마’를 벌었는지는 대체로 명확합니다. 평가이익이든 실현이익이든 딱 떨어지는 금액이 있습니다. 근데 이게 ‘얼마나 잘한 건지’는 모호합니다.

예전에 ‘수익률 측정 방법’에 대해서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수익률을 측정하지 않는 사람이 상당히 많다는 게 그 글의 서두를 여는 지점이었는데, 수익률을 측정하더라도 그게 얼마나 좋은 수익률인지 판단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며칠 전 어떤 모임 자리에서 “워런 버핏보다 수익률 좋으세요”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질문자는 쉽게 농담으로 던진 질문이었지만, 답하는 입장에서는 곤혹스러운 질문이었습니다. 특정 구간의 수익률만을 놓고 봤을 때 제 수익률이 워런 버핏의 수익률보다 좋을 수는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60년 이상의 기간, 1조 달러 이상의 자금, 레버리지, 복합 지주회사라는 구조 대비 20년가량의 기간, 1억 달러가량의 자금, 작은 레버리지, 펀드라는 구조에서의 수익률은 비교가 무색합니다. 근본적으로 미국인과 한국인의 차이도 있고요. 여기서 후자의 수익률이 더 높다 한들, 그게 ‘더 좋은’ 수익인가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런 설명을 하지 못합니다. 더 낮더라도 마찬가지고요.

주식시장은 단기 변동이 심합니다. 요즘은 역사적으로 손꼽힐 정도로 매우 변동성이 높은 시기이기도 하고요. 부동산과는 달리 매일매일의 수익률이 ‘굳이 찾아보지 않아도’ 자동으로 찍혀 나옵니다. 나보다 돈을 잘 버는 사람은 언제나 존재하고, 그중에서 나보다 쉽게 주식을 매매하는 사람도 반드시 있죠.

좋은 수익이냐 아니냐의 평가 기준은 생각보다 어려운 문제입니다. 기간, 벤치마크, 레버리지, 롱숏 익스포저, 변동성, MDD(고점 대비 최대 하락률), 언더워터 기간(고점 대비 하락했다가 얼마 만에 다시 회복하는가), 롤링 승률(xx기간 동안 운용했을 때 돈을 벌 확률이 얼마 정도인가) 등등 매우 다양합니다.

별로 매력적이지 않은 수익률도 기준을 어떻게 적용하느냐에 따라 좋은 수익률이 될 수 있고, 매우 높은 수익률도 평가 기준에 따라서 나쁜 수익률이 될 수 있습니다. 쉬운 예시로, 글로벌 자산배분을 하는 롱온리 투자자의 올해 수익률이 20%라면 매우 잘했다고 볼 수 있고(MSCI ACWI 연초 대비 수익률 12%), 한국 시장 롱온리 투자자의 수익률이 60%라면 나쁜 수익률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코스피 연초 대비 101%, 5월 말 기준).

어떤 성과를 좋은 성과로 볼 것인가의 기준은 사전에 스스로 정의해야 합니다. 안정성이 중요한 투자자라면 다양하게 자산을 배분하고 변동성이나 MDD, 언더워터 같은 지표를 중요시해야겠죠. 장기간에 걸친 높은 복리 효과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단기 수익률에 큰 우선순위를 두지 않아야 하겠죠.

여기서 중요한 것이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보통은 모든 걸 갖고 싶어 하죠. 장기적으로 높은 수익을 내면서, 단기적으로 손해 보지 않고, 매일매일 재산이 늘어나기를 바랍니다. 세상 모든 이치가 그러하듯이, 모든 걸 다 가질 수는 없습니다. 포기할 건 포기하고, 포기한 것에 대해서 욕심부리지 않아야 삶이 평온합니다. 장기 고수익보다는 단기적인 안정성을 선택했으면서 ‘닉스3x 레버리지 투자자’의 수익을 부러워하면 안 되죠.

한편으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겪어봐야 압니다. 스스로 안정을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면서도 ‘닉스 3x 레버리지 투자자’의 수익이 부럽다면, 자신에 대해서 잘못 생각한 겁니다. 아직 세상 경험이 부족한 것이고, 질투가 느껴진다면 질투를 해소할 수 있는 포지션을 만들어보는 것도 좋습니다. 그렇게 ‘닉스 3x 레버리지’를 사보고 나면 또 새로운 생각이 들죠. 하루 만에 전 재산이 반토막이 나는 경험도 해보면서 ‘아, 이런 건 내가 할 일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고, 그다음부터는 옆사람이 그런 식으로 돈을 벌더라도 (예전보다는) 초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열심히 공부’는 무엇인가

주식을 열심히 공부한다는 건 뭘까요? 기업 분석을 열심히 하는 것일 수도 있고, 산업을 깊이 있게 파는 것일 수도 있고, 매크로의 흐름을 밀도 높게 체크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매일매일의 수급 동향 파악도 공부일 수 있고, ‘대가의 포트폴리오’를 추적하는 것도 공부일 수 있습니다. 멘털 관리, 정신 수양도 공부라고 부를 수 있죠.

애초에 주식이라는 게, 수익 자체야 매일매일 실시간으로 자동 계산되어 나오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그게 잘한 성과인지를 파악하기도 어렵고, 더 나아가 어떤 이유로 이런 성과가 나왔는지를 파악하는 건 훨씬 더 어렵습니다. 이 주식시장이라는 것 자체가 우리의 실생활에 비하면 ‘반직관’의 연속입니다. 열심히 성실한 태도로 일상에서 좋은 성과를 내고 좋은 평가를 받던 사람의 입장에서는 총체적인 혼돈의 도가니입니다.

모든 수익에는 작든 크든 운이 영향을 미칩니다. (사실 매우 크게 영향을 미칩니다.) 나심 탈렙의 저작들, 마이클 모부신의 《운과 실력의 성공 방정식》, 조금 극단적으로는 브라이언 클라스의 《어떤 일은 그냥 벌어진다》 같은 책을 보다 보면, 우리가 무언가를 ‘안다’, ‘예측할 수 있다’라는 표현 자체가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 수 있습니다. (앗, 여기서의 ‘알 수 있다’라는 표현도 위험하군요. 조금의 위험을 감수하겠습니다. ㅎㅎ)

앞서 ‘좋은 수익’이 무엇인가를 판가름하기 위해서는 나만의 기준이 필요하다고 한 것처럼, ‘열심히 공부’에 대해서도 자신만의 기준이 필요합니다.

우선 “오늘 열심히 공부했으니 내일 성과가 좋을 거야”라는 기대는 접어야 합니다.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해도 무방합니다. 무엇을 공부했든 간에요. 그럼 기간을 길게 잡고 공부의 대상도 압축해서 “3년 동안 기업 분석을 열심히 하면 3년 누적 성과는 좋을 거야”라는 기대는 의미 있을까요? 처음보다는 의미가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이 또한 50%를 살짝 넘는 수준의 기대여야지, 80~90% 이상의 확률을 부여하면 곤란합니다. 세상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거든요. 회사가 돈을 잘 벌었는데 3년째에 갑자기 전염병이 돌아서 전 세계가 문을 닫을 수도 있습니다.

공부는 오히려, 단기 목표와 단기 성과 측정이 유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날그날 내가 해야 할 과제를 설정하고, 그 과제를 수행했으면 되는 거죠. 물론 그 과제를 설정할 때에는 장기 목표에 기반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나는 바이오 기업을 보는 게 약해. 3년쯤 후에는 바이오 섹터를 잘 아는 사람이 되고 싶어. 그럼 1년 차, 2년 차, 3년 차에는 어떤 공부를 해야 할까? 1년 차 중 첫날인 오늘은 무엇을 하는 게 좋을까? 어떤 자리에서 어떤 사람들과 하는 게 좋을까?”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그리고 성과 측정 방안이 수익률 같은 ‘(측정하기는 쉬워도) 통제 불가능하고 평가하기 어려운 무언가’보다는 다른 형태인 게 좋습니다. 예를 들면 “xx 기업 xx 신약의 새로운 임상 결과가 발표되었다. 이 결과가 어떤 의미인지 1년 전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더 빠르게 이해할 수 있는가?”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공부를 한다는 건 기본적으로 ‘세상이 어떻게 굴러가는지’를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는 겁니다. 그 ‘세상에 대한 이해’의 핵심 중에는 ‘주식시장의 변동성과 불확실성’도 반드시 포함될 거고요. ‘과거에는 이해하기 어렵고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현상이 이제는 손쉽게 이해하고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이게 공부라는 것의 올바른 결실 아니겠습니까?

그 결과로 미래에 대한 예측력이 높아지리라는 보장은 전혀 없습니다. 20년 넘게 이 바닥을 굴러온 저도 내일이 어떻게 될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요즈음의 극심한 변동, ‘모두가 미쳤다’라고 말하는 그 시장의 가운데에 있으면서도 저는 무덤덤하게 하루를 보낼 수 있습니다. 이건 꽤 흥미로운 사실 아닐까요? 공부의 결실은 예측력보다는 평온함일 때 그 가치가 더 선명해질지도 모릅니다.

‘열심히’의 리스크

위에서는 ‘열심히 하고서도 얻지 못하는 것’에 대해 서술했습니다. 여기서는 ‘열심히 함으로써 더 잃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첫째, 열심히 하면 기대치가 높아집니다.

우리 심리의 전형적인 패턴입니다. 내가 투입한 시간과 열정이 많을수록 더 좋은 성과를 기대하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동일한 성과를 보더라도 만족의 정도가 크지 않습니다. 나의 본업 혹은 정말 좋아하는 취미라면, 열정을 쏟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금융시장은 ‘딸깍’ 행위 한 번으로 일이 이루어질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기대치를 높이는 일은 그 자체로 리스크입니다.

실제로는 나쁘지 않은 성과임에도 그동안의 투입이 과다했기 때문에 만족하지 못한다면, 조급한 마음에 다음에 나쁜, 더 나쁜 의사결정을 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둘째, 확신의 강도가 높아집니다.

예전 《주식하는 마음》의 초반부에서도 언급한 내용입니다. 주어진 정보량이 많을수록 내 예상이 맞을 확률을 높게 평가합니다. 확신의 강도가 높으면 어떤 선택을 하나요? 강하게 베팅을 하지요.

정보량이 많아진다 해서 예측이 맞을 확률은 그다지 높아지지 않는데 베팅을 세게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벌 때야 잘 벌겠지만 잃을 때 세게 잃죠. 열심히 공부한다는 건 확신의 강도를 높여서 더 큰 리스크를 짊어지는 포지션을 쌓게 만듭니다.

셋째, 기대치를 못 맞췄을 때의 박탈감이 커집니다.

흔히들 도파민을 쾌락을 관장하는 호르몬(이자 신경전달물질)으로 알고 있지만, 실제 도파민은 ‘쾌락을 줄 수 있는 결과를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동력’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예상외의 큰 보상을 받았으면 많은 도파민을 분비하여, 차후에 비슷한 상황에서 그 행위를 더 하도록 유도합니다. 도파민 보상 회로를 통한 ‘학습’ 과정입니다.

반대로 예상을 하회하는 결과를 보면 도파민이 급속히 사라지면서 오히려 고통을 느낍니다. 일상의 용어로는 ‘박탈감’, ‘상실의 고통’ 등으로 표현할 수 있죠. ‘내가 응당 받아야 할 무언가’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이 경우에도 도파민 보상 회로가 작동하여, 다음에 비슷한 상황에서는 그 일을 하지 않도록 유도합니다.

공부를 열심히 하다 보면 기대치가 높아지고, 그러므로 기대치를 맞추지 못할 가능성이 커지는데, 기대치를 맞추지 못했을 때는 고통도 커집니다. 그러다 보면 “주식은 공부해봤자 의미 없어. 공부 안 하고 대충 하는 게 나아”라는 일종의 허무주의로 빠질 수 있습니다.

앞서 ‘열심히 해도 얻지 못하는 것’ 많이 언급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열심히 하는 게 무의미하다는 건 아닙니다. 다시 한번, 생존 편향을 생각해봅시다. 쉽게 딸깍거려서 수익을 얻은 사람이 많은 반면, 쉽게 딸깍거리다가 큰 손실을 본 사람도 많습니다. 다만 드러나지 않을 뿐이죠.

공부를 한다는 건 ‘신중한 태도’가 발현되는 방식 중 하나입니다. 공부를 할수록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위험도 파악할 수 있게 됩니다. 당장은 시장이 좋아서 돈 번 사람만 눈에 보이지만, 공부를 하다 보면 쉽게 돈 번 사람이 짊어지는 리스크도 보이게 되고, “주식 그거 쉽네” 하면서 막 달려들었다가 크게 손해 볼 가능성을 낮춰줍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건강하게 삶을 누리고 있는 건 “일어나지 않은 불운” 덕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부라는 건 세상이 흘러가는 방식을 이해하는 것이고, 공부를 하면 할수록 ‘일어날 수도 있었던 대체 역사’에 대해서 더 잘 파악하게 됩니다. 이건 인류의 생존에, 그리고 각 개체의 생존에 크게 기여합니다.

공부가 당장의 수익률을 높여주는 데에는 거의 효과를 못 보이지만, 장기적인 생존에는 크게 기여합니다. 그런데 공부를 너무 열심히 하다 보면, 단기 성과와의 괴리 때문에 그 공부의 효용 자체를 부정해버리면서 결국 더 큰 위험을 짊어지는 삶을 살게 될 수 있습니다.

공부의 위험 세 가지를 종합하면 어떻게 되나요? 공부를 열심히 한다 → 확신의 강도가 높아진다 → 베팅을 세게 한다 → 깨질 때 세게 깨진다 / 깨지지 않더라도, 나름 괜찮은 결과가 나왔더라도, 기대치가 높았기 때문에 만족의 정도가 높지 않다 or 실망의 정도가 크다 → 벌든 잃든 간에 공부를 했을 때보다 만족의 정도가 낮고 고통의 강도가 크다 → 공부가 의미 없다고 두뇌가 학습한다 → 공부를 안 하고 쉽게 쉽게 결정을 내린다 → 실제로 짊어지는 리스크가 더 커진다 → 한 번에 훅 간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행위가, 이런저런 메커니즘으로 리스크를 키우고 키워서, 결국 공부를 안 하느니만 못한 위험한 상태로 나아가는 겁니다.

여러분, 공부가 이렇게 위험합니다.

그래서 어쩌라고

위에서 이미 답은 나와 있습니다. 힘 빼고. 느긋하게. 공부의 의의와 한계를 인식하고. 단기 예측력 증대보다는 오늘 하루의 평온함을 측정 기준으로 삼아서. 하면 됩니다.

나이를 먹으면서 “그럴 수 있지”라는 표현을 많이 쓰게 되었습니다. 그럴 수 있지. 과거에는 “어떻게 그럴 수 있어?”라며 황당해하고 분노했던 일들이, 이제는 그러려니 하게 됩니다.

이는 허무주의, 혹은 무책임한 낙관주의와는 다릅니다. 허무주의는 ‘공부해봤자 의미 없으니 안 한다’는 것이고, 무책임한 낙관주의는 ‘어떻게든 되겠지’ 하며 이해 없이 뛰어드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지’는 다양한 직간접적인 경험, 토론, 숙고를 통해 내가 몰랐던 세상에 대해 좀 더 알게 된 잠정 결론입니다. 왜 예측이 안 되는지를 이해했기에 예측을 내려놓는 것이고, 그 내려놓음이 체념이 아니라 평온이 됩니다.

서론의 ‘옆자리 친구’를 다시 떠올려 봅시다. 쉽게 뛰어들고 좋은 성과를 냈으면 축하해주고 밥 한 끼 얻어먹으면 됩니다. (자랑을 해놓고도 밥을 안 산다면 거리를 둡시다. 자랑을 하려면 자랑비를 내고 해야죠.) 그러다가 그 친구가 삐끗하면, 다행히 덜 다친 내가 밥 한 끼 사주면 됩니다. 내가 좋아하는 친구라면요.

잘될 때 부러워할 것도 없고, 못될 때 고소해할 것도 없습니다. 각자의 삶이 있고 각자의 길이 있습니다. 스쳐 지나간 인연이 감사하다면 그 감사함을 표현하면 될 일이고, 무의미한 인연이면 잘 보내주면 됩니다.

열심히 공부한다고 좋은 수익을 낼 수 있나? 그건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적당히’ 하다 보면 평온한 마음은 얻을 수 있습니다.


※ 버핏클럽의 모든 글은 특정 종목에 대한 매수·매도 추천이 아닙니다. 투자 판단에 대한 모든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귀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