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단상] 퀄리티 투자 대가의 오답 노트
시장에 난무하는 소음 속에서 중심을 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럴수록 기본에 집중하고 올바른 원칙을 지켜야 하지만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은 녹록지 않습니다. ‘투자 단상’은 현직 펀드매니저가 시의적절한 고민을 함께 나누는 코너입니다. 투자 대가들이 역경을 이겨낸 방법을 소개하고 실패 사례에서 배우는 기회도 마련하겠습니다. ― 버핏클럽
최근 퀄리티 투자의 대가로 꼽히는 테리 스미스의 투자자 서한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핵심은 투자철학에 ‘모멘텀’을 적극 반영하겠다는 선언입니다. 그가 오랫동안 지켜온 세 가지 원칙, 즉 ‘훌륭한 기업을 산다’, ‘높은 가격을 치르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가운데 마지막 원칙을 수정하겠다고 말합니다. 좋은 기업의 주식을 사고 가만히 기다리는 대신, 시장의 모멘텀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는 뜻이지요. 퀄리티 투자의 상징과 같은 인물의 방향 전환이니 그 배경과 타당성을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테리 스미스가 제시한 첫 번째 배경은 시장 구조 변화입니다. 과거 시장의 80% 가까운 비중을 차지했던 액티브 펀드가 줄어들고, 그 자리를 ETF가 차지했습니다. 스미스는 훌륭한 기업이 일시적인 어려움에 빠졌을 때 매수하는 전략, 이른바 ‘글리치(glitch) 매수 전략’을 선호해왔습니다. 그러나 ETF는 주가가 하락한 종목의 비중을 기계적으로 줄이는 매도를 유발하면서 과거보다 주가 변동성을 키우고 있습니다. 주가가 하락하면 한동안 더 크게 하락하는 현상이 나타나면서, 일찍 매수할수록 반등까지 더 오래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는 설명입니다.
그래서 단순히 저평가된 주식을 사서 기다리기보다, 시장의 모멘텀을 감안해 반등이 시작되는 시점에 매수를 고려하겠다는 것으로 읽힙니다. 전통적으로 3~12% 수준이던 회전율이 올해 상반기 51.8%를 기록한 것을 보면, 바뀐 철학을 이미 적극적으로 적용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배경은 성과 부진입니다. 펀드 스미스는 최근 5년 동안 벤치마크지수인 MSCI World 인덱스를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했고 그로 인해 자금 유출 규모도 커지고 있습니다. 테리 스미스는 “시장은 펀드 사업이 유지되는 기간보다 더 오래 비합리적으로 남아 있을 수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패시브·모멘텀 투자의 위험성이 증명된다 한들 펀드가 문을 닫은 뒤라면 아무 소용 없다는 현실 인식인 셈입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시장의 한복판으로 뛰어들어 시장의 특성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겠다는 쪽으로 전략을 선회한 것입니다.
수긍이 가는 배경 설명이자 현실 인식이지만, 펀드 스미스의 최근 5년간 포트폴리오를 들여다보면 생각이 조금 달라집니다.
펀드 스미스는 주력 종목이었던 노보노디스크에서 큰 손실을 냈고, 장기 성장 추세가 꺾인 브라운포맨과 펩시코 등에도 높은 밸류에이션 배수를 허용했다가 손실을 보는 등 실수가 적지 않았습니다. 2022년부터 2025년까지 시장을 이끌었던 엔비디아를 끝내 편입하지 않았다는 점도 눈에 띄는 대목입니다. 그나마 M7 가운데 구글, 메타,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수익을 낸 덕분에 전체 수익률을 겨우 지탱할 수 있었습니다.
글리치 매수 전략은 노보노디스크에서는 독으로 작용했습니다. GLP-1 관련 제품(위고비, 삭센다 등)의 경쟁 심화에 따른 주가 하락이 일시적이라고 판단해 계속 보유했지만, 결과적으로 고점 대비 50% 폭락을 그대로 맞았습니다. 이 종목 하나가 2025년 펀드 수익률을 3%포인트 떨어뜨렸습니다. 그런데 이 실패는 글리치 매수 전략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경쟁 심화로 경쟁력을 상실하면서 나타난 시장의 자연스러운 재평가를 간과한 데 가깝습니다. 즉 테리 스미스가 그토록 강조해온 ‘기업의 퀄리티’를 잘못 판단한 결과라는 뜻입니다.
또한 GLP-1 트렌드의 반대편에 있는 소비재 기업들에 대한 판단이 부족했다는 점도 아쉬운 부분입니다. 펀드 스미스가 오랫동안 핵심으로 삼아온 섹터는 헬스케어와 소비재입니다. 헬스케어에서 큰 트렌드 변화를 감지했다면 그 역효과를 받는 소비재 기업들의 비중을 줄이거나 편출했어야 하지만, 그러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펀드 수익률을 갉아먹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물론 ETF 위주 장세의 특징과 개방형 펀드가 처한 현실을 인정하고 이를 전략에 반영했다는 점은 인상적입니다. ETF의 특성상 하락하는 종목은 한동안 더 하락하는 경향이 있는 만큼, 글리치 매수 전략을 좀 더 유연하게 적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게다가 워런 버핏의 버크셔 해서웨이와 달리 개방형 펀드는 투자자들이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환매가 몰리면 아무리 좋은 기업을 보유하고 있어도 의미가 없어집니다.
5년 정도의 기간이라면 결국 성과를 결정짓는 것은 보유 기업이 창출한 가치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펀드 스미스는 몇 차례 큰 실수를 저질렀고 저조한 성과는 그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입니다. 기술적·현실적 환경 변화를 자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세상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가치의 흐름과, 경쟁 관계에 따라 흔들리는 기업의 해자에 대해 좀 더 깊이 있는 성찰이 필요해 보입니다.
다행히 최근 신규 편입 종목들을 보면 기존과는 결이 다른 종목들이 눈에 띕니다. 오랜 투자철학에서 벗어났다는 점과 높은 밸류에이션에 대한 우려는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변화가 단순한 모멘텀 추종이 아니라 더 깊이 있는 ‘가치’에 대한 통찰로 이어진다면 다시 살아나는 펀드 스미스와 테리 스미스를 볼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대가의 실수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도 결국 같은 지점입니다. 부진이 찾아왔을 때 가장 먼저 물어야 하는 것은 ‘시장이 변했는가?’가 아니라 ‘내 판단이 틀렸는가?’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