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테크痛] 주가 누르기 ‘장려법’과 가업상속공제
25년간 기자로 일했고 그중 18년을 재테크만 취재한 재테크 전문기자 출신 편집자가 투자와 관련한 굵직한 이슈부터 소소한 투자 아이디어까지 무겁지 않게, 때로는 까칠하게 짚는 글을 연재합니다. IT 버블과 9·11 사태, 펀드 붐, 글로벌 금융위기, 유럽 재정위기, 코로나 팬데믹 등을 온몸으로 겪어낸 28년 차 투자자의 시선으로 전합니다. ― 버핏클럽
대한약품에 장기 투자 중이다. 이름만 들어도 절레절레 고개 돌릴 사람이 많은, 이른바 가치 투자자들의 무덤이라 불리는 기업 중 하나다. 몇 년 보유하다 지쳐서 팔고 미련을 버리지 못해 다시 사서 붙잡고 있는 애증의 주식이기도 하다.
병원 수액을 만드는 대한약품은 전통적인 가치주다. 수액 산업 특성상 신규 경쟁사가 등장하기 어려워 해자가 있다고 평가된다. 대단한 성장산업은 아니라서 두 자릿수 성장률이 나올 리는 없지만 그래도 매년 꾸준히 매출이 증가한다. 배당도 하는데 조금씩 증액해서 1%대이던 배당수익률이 어느새 3%대 중반으로 올라섰다. 게다가 투자자들이 좋아하는 지표 중 하나, 내부자가 주식을 산다. 그것도 몇 년째 계속.
무엇보다 주가가 싸다. 주가순이익배수(PER)가 5~6배 남짓이다. 이익이 쌓여 주가순자산배수(PBR)도 계속 하락, 이제 0.5배 언저리다.
모든 지표가 ‘우리 주식 싸고 좋아요’를 가리키고 있는데 주가는 2018년 고점을 찍은 후 장기 하락세, 코로나 시국에 잠깐 반등했다가 고꾸라져 줄곧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왜? 최대주주가 주식을 사들여서! 내부자가 주식을 사는 게 어떻게 주가 하락 요인이란 말인가?
왜 ‘가치 투자자 무덤’ 됐나?
대한약품은 이인실 창업주가 해방 직후인 1945년 10월에 설립한 조선약품 화학공업사에서 비롯됐다. 그의 아들이자 현 최대주주인 이윤우 회장이 1970년에 입사해 1993년에 대표이사로 경영을 이어받았고 이젠 2023년 대표이사에 취임한 손자 이승영 대표가 3대째 경영 중이다. 다시 말해 가업 경영 회사다.
우리나라는 가업으로 운영하는 기업이 일정 조건에 해당할 경우 상속세를 면제하거나 대폭 줄여주는 가업상속공제 제도를 운영 중이다. 공제 조건은 중소기업 또는 매출액 5,000억 원 미만 중견기업이면서 피상속인, 즉 물려주는 사람이 10년 이상 계속 경영한 경우이다. 혜택은 10년 이상 경영했으면 300억 원까지 상속세 과세에서 공제해주고, 20년 이상은 400억 원, 30년 이상은 600억 원을 빼준다.
대한약품은 연간 매출이 2,000억 원대라서 조건에 든다. 이윤우 회장의 경영 기간도 마치 세제 조건을 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30년 채우고 대표 자리를 물려줬다. 그리고 7월 말 현재 그의 지분율은 25%에 살짝 못 미치는 상황, 현재 시총으로 약 400억 원어치니까 세금 없이 아들에게 지분을 상속할 수 있다는 뜻이다.
공제 한도인 600억 원까지는 한참 남았다. 주가가 크게 오르지만 않는다면 얼마든지 더 사서 물려줘도 된다. 돈으로 상속하면 세금을 내야 할 테니 주식으로 사서 주는 게 낫다. 그래서 산다. 이윤우 회장은 2013년 5월부터 2020년 9월까지 7년 넘게 보유 지분 124만 주, 지분율 20.74%에 변함이 없었다. 그러다 2020년 9월 30일 2,000주 매수로 달라졌다. 그리고 2022년 9월부터 본격적인 추가 매수 행진이 시작됐다. 그러니까 지난 6년간 4%p 이상 지분을 늘린 것이다.
그 전엔 주로 이승영 대표가 추가 지분 매수를 공시했는데 그 규모는 매우 작았다. 월급 받아서 주식을 사나 싶을 정도로 소액을 꾸준히 매수해, 주주들로부터 ‘기특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꼼수 없이 자기 돈으로 샀을 테니까. 그렇게 해서 지분율이 6.37%다. 하지만 경영권을 물려받은 이승영 대표가 사는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을 팔순의 회장이 사고 있는 것이다. 가업상속공제가 아니라면 납득이 안 될 일이다.
주주들은 이 상황을 이렇게 받아들이고 있다. 아, 이윤우 회장이 사망하기 전엔 주가가 안 오르겠구나. 가업상속공제 혜택은 상속에 주어지는 것이지, 사전증여는 아니니까. 이쯤 되면 대한약품 주주들이 바라는 게 무엇일지 궁금해진다. 절대 입으로 내뱉지 못할 그 생각을 모두 하고 있진 않을까? 이런 상황이 싫다.
주가 누르기 방지법, 이걸로 안돼
8월 3일 정부가 세제개편안을 발표했다. 다들 부동산 세제 변경에 이목이 집중돼 있는데 어쩔 수 없이 주식 관련 세제에 눈이 꽂힌다.
생산적금융 ISA 관련 내용은 차지하고, 만년 저평가 기업에 대한 조처가 나왔다길래 잔뜩 기대했는데, 이걸 저평가 해소 방안이라고 봐야 할지 장기 저평가 장려책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개편안 내용인즉, 평가일 기준 상장기업의 최근 12반기(6년) PBR이 업종 내 하위 25%(코스닥은 하위 10%)일 경우 또는 평가기간 전 1년 동안 중복상장, 교환사채 발행 등 주가에 부정적인 행위를 했는지 등을 평가해 그에 해당할 경우 상속·증여세를 과세할 때 주가의 1.3배 또는 해당 기간 평균가 중 높은 값을 적용해 세금을 물리겠단 뜻이다.
이걸 하려고 시간을 그렇게나 끌었나 한숨이 나온다. 이 말인즉, 현재 주당순자산(BPS)이 1만 원이고 주가가 3,000원인 PBR 0.3배인 기업의 최대주주가 나머지 주식을 몽땅 공개매수해 자진 상장폐지할 때 주당 3,900원에만 사주면 된다는 뜻이다. 최대주주 입장에선 저 공개매수로 주당 6,000원이 넘는 가치의 자산을 독식할 수 있게 된다.
이걸 저평가 해소를 위한 대책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까? 이 개정안을 거꾸로 풀이하면 6년 이상 주가를 누르기만 하면 되는데 주주환원이니 사업 확장이니 하면서 주가 저평가를 해소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우리나라 주식시장에선 6년 저평가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 주식이 널렸다. 이건 당근도 채찍도 아니다. 그래서 투자자들 사이에선 벌써 ‘주가 누르기 장려 법안’이라는 비아냥이 나오기 시작했다.
가업상속공제 개정안도 포함됐다. 논란을 빚었던 교외 대형 베이커리 카페 등 상속·증여세를 피하기 위해 꼼수로 활용되던 업태들을 타깃으로 한 모양이다. 주차장, 병원, 약국, 마트, 운송, 창고업도 공제 대상에서 제외됐다. 또 이걸 막기 위해 허들을 높인 게 눈에 띈다. 경영 기간 요건을 기존 10년에서 30년 이상으로 대폭 올렸다.
하지만 법이 이렇게 바뀐들 대한약품의 지분 승계는 털끝도 건드리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더 좋아진 측면도 있다. 상속 공제 한도가 최대 1,000억 원으로 상향됐는데 공제 한도를 피상속인의 경영 연수 1년당 20억 원으로 산정한단다.
이윤우 회장의 재직 기간은 50년을 훌쩍 넘는다. 대표로 근무한 기간만 30년이다. 경영 기간의 기준이 대표이사에 등재된 기간에 한정하고 있지만 그래도 30년이면 이미 600억 원이다. 만약 대표 재직 기간이 10년쯤 더 늘면 300억 원을 더 늘릴 수 있을 것이다. 이러다 팔순 넘어 (공제 한도를 늘리기 위해) 경영에 복귀한다는 말이 나오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이번 세제 개편안으론 만년 저평가 기업도, 대한약품 같은 저평가이면서 가업상속공제 혜택을 노리는 기업도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한다.
가치평가 전 부문에 PBR 0.8배 적용해야
상속·증여뿐 아니라 공개매수를 이용한 상장폐지 등에서도 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최근 SJ투자홀딩스가 골프존홀딩스의 주식을 주당 6,700원, 그러니까 BPS 1만 9,000원의 약 3분의 1 가격으로 공개매수를 진행하면서 주주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심지어 현재 매각을 추진 중인 골프장의 시장가격 등을 감안하면 실질 자산가치가 장부가보다 높다는 것이 주주들의 주장이다. 미국계 펀드 터톤캐피탈이 이에 반발해 금융감독원에 진정서를 제출하고 회사에 공개서한을 보냈지만 회사 이사회는 아무 문제가 없다며 이번 공개매수에 찬성하기로 의결했다.
SJ투자홀딩스는 골프존 창업주의 아들이 설립한 특수목적법인(SPC)이다. 이들은 공개매수 후 상장폐지할 계획이다. 헐값에 아들이 그룹을 삼키겠다는 뜻이다. 상법 개정에도 주주 이익 훔치기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상법 개정이란 성과물을 낸 자본시장 개혁은 이재명 정부가 내걸었던 코스피 5000 달성을 초과해 9000이란 신세계를 보고 나더니 까맣게 잊혔나 보다.
이번 개편안은 올해 안에 논의를 거쳐 내년 7월부터 적용될 예정이다. 이렇게 성긴 그물로는 이들을 잡을 수가 없다. 국회에서 대폭 수정해야 한다. 최소한 더불어민주당 이소영 의원이 내걸었던 PBR 0.8배 기준을 기업분할, 인수합병, 주식 교환, 주식 상장폐지를 위한 공개매수, 상증세 과세, 그리고 가업상속공제 혜택 부여 기준에 이르기까지, 기업 가치 평가 전 부문에 걸쳐 적용하는 등의 대개혁이 이뤄져야 만년 저평가 해소에 시동이라도 걸 수 있을 것이다. 갈 길이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