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의 주식 공부 38] 홍대리는 왜 AI를 혼자만 몰래 쓰는가
주식 투자자가 알아야 할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지식을 담아 ‘최소한의 주식 공부’를 연재합니다. 주식이라는 자산의 근본적인 실체에서 시작해, 의사결정의 주요 원칙과 피해야 할 함정에 대해 홍진채 라쿤자산운용 대표가 독자 여러분과 함께 고민합니다. ― 버핏클럽
지금의 인공지능은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래가 아니라 이미 다가온 현실입니다. 그러나 사회 전체적으로는 그 변화를 쉽사리 체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인공지능 관련 주식들이 신뢰를 못 받는 것 같기도 합니다. 오늘은 인공지능으로 인한 변화가 쉽사리 체감되지 않는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이미 다가온 미래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긴 게 2016년이었죠. 챗GPT라는 챗봇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게 2022년이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이제 인류가 기계에 정복당했다느니, 일자리가 사라지고 인간 소외 현상이 만연해질 것이라느니 등 비관적인 전망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수년이 흐른 지금, 노동시장은 생각보다 강하고, AI로 인해 인간이 갈 곳이 없어지는 현상은 ‘전 사회적으로는’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일부 직업군에서 신규 채용이 급감하고, 일부 기업들이 AI를 빌미로 대량 해고를 하긴 했으나, 전체 실업률이나 임금 상승률은 큰 변화를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하이퍼스케일러들은 인공지능 관련 투자를 끝없이 늘리고 있고, 자체 자금으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 막대한 외부 자금을 끌어다가 투자 재원으로 충당하고 있습니다. 밸류체인의 핵심에 있는 엔비디아는 고객사에게 자금을 지원하거나, 고객사의 차입에 채무 보증을 서기도 합니다.
인공지능 관련 투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데, 막상 그로 인한 변화 - AI로 인한 새로운 제품, AI로 인한 내 생활의 변화 - 는 보이지 않으니 ‘이것은 거품이다’라는 판단에 쉽사리 마음이 가기도 합니다. 한편으로는 전쟁으로 인해 높아진 물가가 더 피부에 와닿기도 하고요.
인공지능이 가진 힘은 막대합니다. 향후의 ‘잠재력’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인류가 가진 인공지능은 상당한 지식노동을 대체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개인적으로 느끼기에도, 그리고 주변에 인공지능 에이전트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분들의 평가를 빌리더라도 그렇습니다. 인공지능은 지식노동자가 하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거의 대부분의’ 인간 역량을 뛰어넘었고, 그 지능을 활용해서 일부 ‘실제 작업’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미래가 아니라 이미 다가온 현재입니다.
개인의 최적화, 조직의 최적화, 사회의 최적화
“생산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생산성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지만, 그 단어가 지칭하는 바는 그때마다 미세하게 다릅니다.
생산성이 높다는 건 무엇을 뜻할까요? 사전적으로는 동일한 단위노동을 투입했을 때 산출량이 많아졌다는 걸 뜻합니다. 실제로 우리가 생산성이 높아졌음을 느끼는 때는 언제일까요? 소비자 단에서는 완전히 새로운 제품, 과거보다 더 성능이 좋은 제품을 만났을 때가 될 것입니다. 회사 단에서는 그런 새로운 물건을 통해서 돈을 더 많이 벌거나, 내부의 효율화를 통해서 같은 물건을 생산하더라도 더 싼 값에 많이 생산해서 팔 수 있을 때일 것입니다. 그 회사에서 일하는 직원 입장에서는, 같은 업무 시간을 투입하고도 더 많은 일을 수행하거나, 같은 일을 더 짧은 시간에 수행하고 여가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을 때 생산성이 높아졌다고 할 수 있겠죠.
쉽게 말해 1) 피처폰만 있던 세상에 아이폰이 등장하거나 2) 아이폰을 더 싸게 대량으로 찍어낼 수 있거나 3) 애플 직원의 주당 근무 시간이 절반이 되어도 회사가 잘 굴러갈 때, 우리는 생산성 향상을 느낄 수 있습니다. 여기서 눈치챘겠지만 생산성 향상을 느끼는 경로, 생산성 향상이 사회에 미치는 파급력이 이 각각의 경우에 미묘하게, 그러나 유의미하게 다릅니다. 누군가는 생산성 향상을 느낄 때 누군가는 느끼지 않을 수 있고, 이것이 기업의 이익을 늘리는 데에 도움이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습니다. 사회 전체의 고용, 임금, 물가에 영향을 크게 미칠 수도 있고 안 미칠 수도 있습니다. 철도, 자동차, 비행기, 통신 기술은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세상을 바꿨습니다. 인공지능은 어떨까요?
(1) 아예 새로운 물건이 나왔는가
챗봇은 다들 써보셨을 테니 챗봇은 예외로 합시다. 챗봇을 보면서 사람들이 느끼는 건 “아, 챗GPT 덕분에 내 삶이 바뀌었어. 행복해.”라기보다는 “그래서 AI 킬러 앱은 왜 안 나오나요?”일 겁니다. 특히 투자자 입장에서 그렇죠. 챗GPT는 아직 적자 상태고, 소라(오픈AI의 동영상 생성 서비스)는 접었습니다. 프론트엔드, 즉 최종 소비자 단에서 파는 물건 중에 이익이 나는 물건이 없다는 겁니다.
제가 느끼기에 챗봇은, 뭐랄까, 인공지능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티저 이미지’에 가깝습니다. 체험판도 아니고 음, 그보다 낮은 수준의, 상당히 원시적인 서비스라는 거죠. 현대의 블록버스터 영화와 비교하면 초창기의 무성영화, 혹은 그 이전의, 축음기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진짜배기는 AI 에이전트에 있습니다. 실제로 작업을 수행하는 겁니다. 챗봇은 인간이 던진 질문에 그럴싸하게 대답을 만들어낼 뿐, 실제 작업을 수행하지 않습니다. “응, 네가 원하면 ~~~한 작업을 해줄게.” “했어?” “아니, 아직 안 했어. 원하면 이번에 진짜로 해줄게.”의 무한 반복을 겪어본 분들은 아실 겁니다.
물론 지금은 많이 바뀌어서 챗봇도 실제 작업을 어느 정도 수행합니다. 이런 작업 수행 능력을 곁가지가 아니라 주요 능력으로 삼은 것이 AI 에이전트입니다. 에이전트의 범위도 꽤 모호하긴 한데, 여기서는 내 실제 업무 수행에서 챗봇의 답변을 참고해서 ‘내가’ 작업을 하느냐, 실제 내 작업의 일부를 프로그램이 ‘대신’ 수행해주느냐로 구분하겠습니다. 전자라면 에이전트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고, 후자여야 에이전트를 사용하는 겁니다.
개발자들은 대부분 에이전트를 사용합니다. 이제 인간이 손으로 코드를 짜는 시대는 저물었습니다. 코드를 검토하고 책임지기 위해서 인간이 코드를 이해하는 능력은 여전히 필요하지만(논외로 우리 뒤 세대가 이 능력을 어떻게 쌓을지 걱정이긴 합니다), 직접 코드를 짜는 업무는 이미 거의 사라졌습니다. 인쇄기가 등장하면서 필경사라는 직업이 사라졌듯이 말이죠. “아예 새로운 물건이 나왔는가?”라는 질문에 개발자들의 답은 당연히 “그렇다”입니다.
문제는 그다음 단계입니다. “그렇게 해서 개발한 물건들이 대단히 달라졌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모호합니다. 혹은 “아니다”에 가까울 겁니다. 팔란티어의 파운드리나 세일즈포스의 에이전트포스 등은 AI의 도입을 고객사가 체감할 수 있는 서비스이긴 합니다. 그러나 그 외에는요? 소프트웨어 업체들이 자사의 서비스를 개발하며 뒷단에서 AI를 얼마나 썼건 간에, 고객사에 도달하는 제품에 AI의 흔적이 남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말 그대로 에이전트는 에이전트입니다. 인간이 하던 업무를 가져가서 대신 수행하고, 더 빠르게, 더 똑똑하게 수행할 뿐입니다. 아주 천재적인 새로운 무언가를 내놓는 게 아니기 때문에, 고객사가 느끼기에 제품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다만 새로운 기능 도입, 요청 사항 처리 등이 좀 더 빨라졌다고 느낄 수는 있겠죠. 그 뒷단에 AI가 있든 없든 그건 고객의 관심사가 아닙니다.
위 문단에서는 고객‘사’만을 언급했습니다. 즉 B2B에서 체험하는 변화라는 거죠. B2B에서도 변화를 크게 느끼지 못하는데 B2C, 즉 최종 소비자가 느끼는 변화는 더욱 없습니다. 아마존이 인공지능으로 아무리 물류를 효율화한다고 한들, 고객은 어떤 변화를 느낄까요? 단지 배송이 더 빨라질 뿐이겠죠. 일주일 걸리던 배송이 하루가 될 수는 있겠지만, 물리적인 이동 속도를 뛰어넘어서 방금 결제한 물건이 3분 후에 내 집 앞에 와 있거나 하는 일은 일어날 수 없습니다. 자동차 공장에서 인공지능으로 공정을 효율화하고, 반도체 설계를 AI가 대신한다 한들, 소비자가 그걸 AI로 인한 변화라고 느끼지는 않습니다. 은근히 무언가가 달라지긴 했지만, 고객이 ‘AI 뚝딱’ 해서 무언가 만들어내는 마법 같은 경험과는 다릅니다.
(2) 회사의 생산성이 올라갔는가
AI 에이전트를 채택하는 회사 내부로 들어가봅시다. 변화에 민감한 회사들은 정책적으로 에이전트 사용을 장려했습니다. 그 결과 회사의 생산성이 올라갔을까요?
소프트웨어 회사들은 당연히 “그렇다”라고 대답할 겁니다. 한 사람이 수행할 수 있는 업무의 범위가 이전보다 수십 배, 수백 배 커졌습니다. 그 결과로 아예 새로운 제품을 내놓을 수 있었는가는 논외로 하더라도(“아니다”에 가깝더라도), 소프트웨어 회사의 생산성은 올라갔습니다.
그 외의 회사들은 어떨까요? 에이전트라는 신기한 녀석이 나와서 이걸 최대한 많이 쓰라고 직원들에게 장려한 ‘토큰맥싱’ 정책의 결과, 수많은 회사들이 이 정책을 철회하고 있습니다.
사실 기본부터 잘못된 정책이지만, 인류가 겪어야만 했던 시행착오라고 생각합니다. 토큰(AI의 작업 수행에서 입력/출력의 기본 단위)을 얼마나 많이 썼는지를 직원의 KPI로 삼다니, 그럼 무슨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무의미한 일, 이를테면 땅을 팠다가 거기서 파낸 흙으로 다시 땅을 덮는 일만 계속 반복해도 일을 많이 한 것처럼 보입니다. 개인은 당연히 그쪽으로 최적화를 합니다. 정책이 그렇게 설정되었으니 개인은 정책에 맞게 성과를 높이는 방향으로 업무를 수행합니다. 물론 땅을 팠다가 덮는 일은 극단적인 비유이고, 대부분의 직원들은 스스로 유의미한 일이라고 생각해서 많은 작업을 수행했겠죠. 그리고 작업량만을 늘리면 작업의 퀄리티는 당연히 떨어집니다. 회사 입장에서는 토큰비용을 와장창 썼는데 실제로 나오는 생산성 증가는 크게 보이지 않으니 경영진은 “AI 에이전트의 도입으로 인한 생산성 증가가 기대만큼 높지 않았다.” 같은 발언을 합니다.
한편으로 회사 차원에서 그렇게 적극적으로 에이전트 사용을 도입하지는 않았고, 일부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사용해보고, 경영진은 약간의 관심만 있는 정도라고 해봅시다. (아마 대부분의 기업들이 이런 상태일 겁니다.) 어떤 직원이 에이전트를 써서 뭔가를 자동화하고, 업무 수행 능력이(즉 생산성이) 올라갔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그럼 경영진이 그 직원을 불러다가 이야기하겠죠. “홍대리, 요즘 거 인공지능 잘 쓴다고 하던데, 다른 직원들에게도 사용법 좀 알려주지 않겠나?” 의욕 넘치는 홍대리는 사내 세미나를 열어서 AI 에이전트 사용법을 강의합니다. 일부는 관심을 가지지만 대부분은 “자, 커맨드 프롬프트 창을 열고요.”에서 질색을 해버립니다. (그리고 그 업무를 맡긴 경영진은 그 세미나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회사의 적극적인 장려가 없는 한 회사의 AI 에이전트 도입은 느리고, 관련 업무는 사용 노하우를 가진 특정 직원에게 몰립니다. 그렇다고 급여를 더 줄까요? 줄 이유가 없죠. 일을 인공지능이 대신 해준다는데 그 직원에게 급여를 왜 줍니까. 심지어 회사는 토큰비용까지 내느라 비용이 더 늘어났는데 말입니다. 홍대리 입장에서는 변죽만 울리고 일거리는 늘어나고 보상은 받지 못하는 상태가 됩니다.
여기서 우리 홍대리의 최적화는 어디일까요? 에이전트를 혼자만 몰래 쓰는 겁니다. 세 시간이 걸릴 일을 30분 만에 해버리고, 남는 두 시간 반은 자유롭게 쓰는 거죠. 여가를 즐길 수도 있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자동화 안 되는 다른 일에 에너지를 쏟을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홍대리의 만족도는 높아지고, 그 대가로 개인이 비용 부담을 했을 테니 거기에 대한 비용효율성을 따지면 됩니다.
일이 이런 식으로 흘러가면 회사의 생산성은 높아지지 않습니다. AI를 적극적으로 잘 활용한 일부 직원의 생산성은 높아졌지만, 그 생산성이 회사의 생산성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개인의 최적화와 조직의 최적화가 일치하지 않는 거죠.
만약 똑똑한 경영진이 이를 눈치채고 해당 직원에게 많은 권한과 보상을 주면 문제가 해결될까요?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수백 개의 벤더사를 관리하는데, 업무를 최적화해서 벤더사를 열 개만 남겨도 되는 상황이 되었다고 해봅시다. 이 직원이 벤더사를 그렇게 급격히 줄이자고 의견을 낼 수 있을까요? 그렇게 해서 회사의 비용이 줄어들어도 줄어든 비용은 대부분 회사가 흡수합니다. 그리고 벤더사를 줄였다가 문제가 생겼을 경우, 그 문제에 대한 책임은 그 직원이 지겠지요. (그리고 당장에, 해당 벤더사들에 “계약을 해지합니다”라고 통보하는 역할도 그 직원이 맡아야 할 텐데요. 굳이?)
‘조직 차원에서의’ 생산성 향상은 단지 새로운 기술이 등장했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조직의 여러 구성원 간의 이해관계, 기업 간 이해관계, 책임과 보상의 균형, 리스크 관리 등 다양한 요소가 개입합니다. 쉽게 말해 매월 이용료 수백만 원을 내는 어떤 소프트웨어를 사내에서 직접 개발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을 때, 반드시 직접 개발을 택하는 게 이익일까를 생각해보면 되겠습니다. 단지 비용 절감만의 문제가 아닌 거죠.
(3) Win + R → cmd
결국 한 개인이 에이전트를 이용해서 개인의 생산성 향상을 이루어냈다 하더라도, 그것이 조직의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고, 최종적으로 각 개인이 그 산물을 누리는 데에는 아주 많은 과정이 필요합니다. 단지 기술과 돈의 문제가 아니라 그 외의 다양한 요소가 필요합니다.
이는 앞으로도 바뀌지 않을 겁니다. 에이전트가 가져오는 생산성 향상을 체감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직접 클로드 코드나 코덱스 같은 코딩 에이전트를 설치해보는 것. 이건 엄청나게 큰 허들이 있습니다. 까만 커맨드 프롬프트 화면, 파이썬 설치, 이걸 해본 사람은 전 인류의 0.1% 미만일 것이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아주 특이하게 199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낸 사람들, ‘도스 세대’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운 좋게 그 거부감이 덜합니다만, 그 외의 세대에서는 특이한 일부만 그 거부감을 해소할 수 있습니다.
다른 방법은 소프트웨어 회사들이 자기네 서비스에 고객이 AI를 실제로 써볼 수 있는 인터페이스를 제공하는 일입니다. 그건 상당히 거부감이 덜하고, 고객사의 경영진을 설득하기에 유리합니다. 그래서 실제로 그렇게 흘러가고 있고, 여러 소프트웨어 회사들이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도 누가 부가가치를 흡수할 것이냐의 문제가 남습니다. 새로운 부가서비스니까 그만한 과금을 할 테고, 과금의 정도에 따라 고객사의 생산성 증가와 벤더사(소프트웨어업체)의 이익 사이에 트레이드오프가 있겠죠. 무엇보다, 최종 고객이 피부로 느끼는 경험과는 거의 무관합니다. 나이키 매장 직원들이 에이전트포스를 이용하는지 아닌지, 신발을 사는 우리가 차이를 느낄 수 있을까요? (실제 차이는 있겠지만, 그것을 AI 덕분이라고 인지하느냐의 관점에서 말이죠.)
해고의 사회학
좀더 거시적인 이야기를 해봅시다. 고용은 왜 멀쩡할까요? 분명 어디선가는 큰 변화가 일어나고, 그 변화가 밸류체인을 따라 차례로 전이되고 있는 건 맞습니다. 그렇지만 초기에 우려했던 만큼의 대량 해고, 실업률 증가에는 못 미칩니다. 간헐적으로 들리는 해고 사례는 오히려 ‘원래 해고를 하고 싶었는데 AI를 핑계 삼아 해고를 진행한다’라는 ‘AI 워싱’이라는 의혹을 받고 있기도 합니다.
조직 운영 관점으로 다시 들어가봅시다. 해고는 어렵습니다. 인력을 줄이면 사회적으로 비난받습니다. 인력을 줄였다가 문제가 생기면 그 책임은 해고를 결정한 사람이 집니다. 당장에 AI로 인한 생산성 증가를 느끼기도 어려운데, 거기서 대뜸 대량 해고를 결정할 경영진은 거의 없을 겁니다.
개인 관점에서 봅시다. 어떤 열정 가득한 직원이 AI 에이전트를 이용해서 30명이 하는 업무를 혼자서 다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해봅시다. 감히 부서의 29명을 다 자르자고 경영진에게 제안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했을 때 쏟아지는 비난과 감내해야 할 책임은 둘째 치고, 그 해고가 성사된 다음에 30번째 해고자가 본인이 될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사람들은 생각보다 변화를 매우 싫어합니다. 새로운 무언가가 등장했을 때 그걸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내 삶을 바꿔보려는 사람은 전체 인류의 극히 일부입니다. 그런 성향이 다수였다면 애초에 ‘얼리어답터’라는 말이 왜 존재하겠습니까. 컴퓨터가 등장하고, 윈도, 엑셀 등이 사회에 자리 잡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인공지능도 마찬가지입니다. 심지어 그 기술이 나의 일자리를 위협할 수도 있는 기술이라면, 그걸 내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도입하자고 주장할 이유도 없는 거죠.
실제 변화는
그래서 현재 상태는, 큰 변화를 가져올 핵심 기술 역량(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지능)은 확보되었다, 그러나 사회에 전반적으로 도입되기에는 충분치 않다(누가 책임질 것인가, 비난을 감당할 것인가, 그 정도로 충분히 신뢰할 만한가 등)라고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인공지능 밸류체인에 있는 핵심 회사들은 그 가능성을 보고 투자를 집행하고 있고, 다수의 인류는 아직 피부에 와닿지 않으니 반신반의합니다.
실제 변화는 크게 두 경로로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점진적인 경로입니다. 에이전트로 인해 특정 개인이 할 수 있는 업무 역량이 크게 늘어난 건 명백하고, 그건 창업의 가능성을 높입니다. 스타트업은 AI를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기존 회사의 레거시(해고 및 기타 조직 역학으로 인한 느린 속도)에 구애받지 않고 빠르게 무언가를 해낼 수 있습니다. 회사가 AI를 도입했다고 해서 아예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낼 가능성은 (모든 창업이 그러하듯) 낮지만, 창업의 모수가 많아지니까 새로운 무언가가 나올 확률도 높아집니다. 스타트업이 성공한 이후, 이 회사가 고용하는 인원은 과거보다 훨씬 적을 수 있습니다. 그런 작고 빠른 회사가 크고 느린 회사를 대체하고, 결국 큰 회사가 폐업하면서 고용의 전환이 있겠죠. 수십 년에 걸쳐서 그런 일이 진행되고 나서 사람들은 깨달을 겁니다. 인간이 인공지능에 일을 빼앗겼구나, 라고요. 그러나 그때가 되면 인간은 다른 형태의 일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예 일이라는 것의 의미가 바뀌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급진적인 경로입니다. 금융위기든 경기침체든 전쟁이든 외부의 큰 충격이 있고, 회사가 힘들어져서 비용을 줄여야 할 때. 그때는 앞서의 느리고 보수적인 관행이 많이 무너집니다. 왜 우리는 수백 개의 벤더사를 유지하고 있지? 왜 이 부서에는 직원이 서른 명이나 되지? 더 줄일 수 없어? 여기서 그동안 누적된, 각 개인의 생산성 향상이 조직으로 전이됩니다. 수천 명이 하던 일을 사실은 수십 명이서도 할 수 있었던 것을 경영진이 눈치채고, 회사가 ‘위기 상황이니까’ 위기에 맞는 인력 감축으로 대응하더라도 평시처럼 크게 비난받지 않습니다. 실패해도 다 같이 망할 뿐이고, 성공하면 영웅입니다. 욕은 좀 먹겠지만요.
나 그거 뭔지 알아. 별거 없던데
투자자 관점에서 흥미로운 포인트는 이쪽일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무언가를 ‘안다’고 착각할 때 크게 실수하게 마련입니다.
챗GPT의 가입자는 수억 명입니다. 인류 역사상 이렇게 빠른 속도로 다수가 어떤 서비스를 이용해본 적은 없습니다.
근데 대부분의 챗봇 사용 경험은 어떤가요? 챗봇과 진지하게 어떤 담론을 논의하고, 지식의 경계를 확장해가는 경험을 해본 사람은 몇이나 될까요? 대부분의 사용 경험은 점심 메뉴 추천, 직장 상사 욕하기, 컴퓨터 고장났어 고쳐줘 같은 일일 것입니다. 신기하기는 하지만 내 인생을 바꾸지는 못하죠. 나의 생산성을 높여주지도 못합니다. 음악, 이미지, 동영상 생성은 신기하기는 한데, 내가 음악가도 아니고 웹툰 작가도 아니고 영화감독도 아니니 흥미 본위로 잠깐 해보다 그칩니다. 그런 와중에 오픈AI는 적자가 어마어마하다고 하니까 “그럼 그렇지. AI는 돈이 안 돼.”라는 결론에 다다르기 쉽습니다.
그런 ‘쓸모없는 것’에 인류 사회가 막대한 돈을 쏟아붓고, 자금 지원이 서로 물고 물리면서 순환 참조가 되고, 심지어 금리는 올라간다고 합니다. 업계 관계자도 “생산성 향상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그럼 당연히 ‘거품 붕괴’에 대한 공포가 생기겠죠.
여기에 대해서 어느 쪽이 정답이고 어느 쪽이 틀렸다고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AI가 이미 세상을 바꿀 역량을 지녔고, 인류 사회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의 과정만 남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RSI, 재귀적으로 인공지능이 스스로를 발전시키는 단계에 도달하고 나면, 인류는 되돌아갈 수 없는 하나의 강을 건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단계에서(혹은 그 이전의 단계에서도) AI 모델 서비스 업체들이 수익성을 갖추는 건 크게 어렵지 않은 일이라 생각합니다. (전체 업체가 아니라 특정 업체들에 한해서지만요.)
그러나 이건 개인의 생각일 뿐이고, 틀릴 수 있습니다. 이 글에서 말씀드리고 싶었던 것은, 이런 심각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다수가 이 변화를 체감하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아직도 절대다수는 업무에 AI를 이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챗봇조차도요. 그리고 챗봇이나마 이용해보고자 하는 사람들은 “아, 그거 환각이 너무 심해서 못 쓰겠던데요.” 정도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실제 AI 에이전트를 쓰고 생산성을 향상시킨 경험을 해본 극히 일부의 사람들, 그러한 극히 일부의 사람들이 만들어낼 엄청난 파괴력을 보면서 ‘두려움에’ CAPEX를 집행하는 사람들이 체감하는 변화와 대중이 느끼는 변화는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