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테크通] 제철 맞아 살이 통통 오른 ELS
25년간 기자로 일했고 그중 18년을 재테크만 취재한 재테크 전문기자 출신 편집자가 투자와 관련한 굵직한 이슈부터 소소한 투자 아이디어까지 무겁지 않게, 때로는 까칠하게 짚는 글을 연재합니다. IT 버블과 9·11 사태, 펀드 붐, 글로벌 금융위기, 유럽 재정위기, 코로나 팬데믹 등을 온몸으로 겪어낸 28년 차 투자자의 시선으로 전합니다. ― 버핏클럽
ELS, 고점에 가입해서 문제
ELS(주가연계증권)에 가입했다. 주가 하락에 머리를 움켜쥔 수많은 투자자들은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냐 하겠지만, 나 또한 계좌가 녹아내려 속이 쓰리긴 한데, 손실은 손실이고 또 다른 기회는 마땅히 잡아야 하지 않겠나.
ELS에 대해 좋은 인식을 가진 투자자는 많지 않을 것 같다. ELS가 세인의 관심사가 되는 경우는 주로 ELS에 투자했다가 큰 손실이 발생했거나 금융회사의 불완전 판매가 도마에 오르는 때다. ELS가 금융회사의 추천 목록에 오르거나 관련 기사가 많아지는 반대의 경우도 있긴 한데 대개 증시가 타오르면서 주식 연계 상품들까지 덩달아 곁불을 쬘 때다.
이 말을 거꾸로 풀어보면, 주가지수 혹은 시장을 대표하는 주식 종목들의 주가가 한창 높을 때 이곳저곳에서 추천되어 가입자가 늘어나고 그래서 큰 손실도 발생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ELS 상품의 구조라는 게 가입 시 정한 기준가 대비 기초자산 가격이 일정 수준(하락 한계선) 아래로 떨어지면 손실이 발생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주가가 많이 하락했을 때가 ELS에 투자하기 좋은 시기다. 바로 요즘 같은 때.
이미 반 토막인데 여기에서 또?
ELS 상품의 설계 구조는 꽤 복잡해 보이지만 뼈대는 단순하다. 코스피200, S&P500 같은 주가지수나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우량주의 주가를 기초자산으로 삼아 해당 가격이 가입 당시보다 얼마 이상 하락하지 않으면 처음 약속한 수익을 준다(스텝다운형). 조기에 상환해주는 조건은 상품마다 제각각이고 수익금을 매달 지급하는 경우도 있긴 한데, 결국 해당 ELS 가입자에게 손실이 발생할 수 있는 조건, 마지노선(녹인, Knock-in)이 어디인가가 핵심이다. 가입 기간 중 그 선만 넘지 않는다면 약속한 수익을 받을 수 있다.
이번에 가입한 녹인형 ELS의 손실 경계선은 35%다. 기초자산 가격이 -65% 넘게 추락하지 않는 한, 즉 지금의 3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지 않는 이상 증권사가 내건 두 자릿수 연수익률을 취하게 될 것이다.
코스피 지수가 8,000에서 4,000으로 하락하는 것과, 6,000에서 3,000으로 떨어지는 것은 똑같은 ‘반 토막’이지만 밸류에이션을 감안할 때 발생 가능성 면에선 엄연히 후자 쪽이 낮다고 볼 수 있다. ‘이미 고점에서 이만큼 떨어진 상태인데 여기에서 또 반 토막 난다고?’ 이게 내가 ELS 투자를 결정하는 데 작동하는 기본 논리이자 태도다. 그럴 확률이 매우 낮다는 확신이 설 때 가입한다.
약세장일 때 혹은 주가 급락기에 ELS에 관심을 가져야 할 또 다른 이유는 목표 수익률이 올라간다는 점이다.
코스피가 8,000을 넘나들던 시기엔 연 6~8%를 내걸었던 ELS 상품들이 지금은 그때와 흡사한 가입 조건으로 연 10%를 넘나드는 목표 수익률을 제시하고 있다. 조금만 욕심내면 연 12% 언저리도 노려볼 수 있다. 물론 해외 개별 주식 종목을 기초자산으로 해서 연 20% 넘는 고수익률을 내걸고 유혹하는 상품들도 있지만 중저위험·중고수익을 지향하는 기준에선 탈락이다.
그래서 시장이 뜨겁게 달아올랐을 때 ELS 등 주가 연계형 상품을 거들떠보지 않지만, 주가가 많이 하락했을 때, 모든 언론이 주식 투자자들의 손실을 부각할 때, 나는 마치 주식 손실을 본 나와는 다른 사람인 양 자아를 분리해 증권사들의 ELS 상품 목록을 뒤지는 것이다.
연 5% 주는 ELB도
투자 위험이 크게 줄어든 ELS도 불안해 보인다면 ELB(주가연계파생결합사채)는 어떨까. ELS처럼 수익률 조건을 내건 주가 연계형 상품이긴 한데, 그 조건을 달성하든 못하든 수익률 차이가 거의 없어 사실상 약속한 수익과 원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 상품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에 모 증권사가 판매한 ELB를 예로 들면, 삼성전자 주가가 1년 후에 가입 당시(기준가)의 2배를 넘으면 연 5.01%를 주고, 그보다 낮으면 연 5.00%를 준다. 심지어 주가가 하락해도 똑같이 연 5.00%다.
은행 예금처럼 정부가 예금자보호법으로 원리금을 보호하는 것은 아니라도, ELB를 발행한 증권사가 망하지 않는 한 만기까지 보유하면 그 수익을 취할 수 있으니 ‘안전’에 매우 가깝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래서 ELS나 ELB나 주가와 연계된 파생결합상품인데도 요즘 같은 시기엔 금리형 상품처럼 보이기도 한다.
연 5% 수익률은 배당 투자를 애정하는 내가 배당주를 선별하는 요건 중 하나이기도 하다. 주가 하락 위험을 부담하지 않고도 5% 수익을 얻을 수 있다면 굳이 주식이 아니어도 괜찮지 않을까? 물론 주가가 올랐을 때 누릴 차익 기대감은 포기해야겠지만.
미국 국채 금리 상승과 함께 주택담보대출 금리도 오르고 마이너스통장 금리도 오르고 다 오른다고는 하는데, 다른 한편으론 그만큼 돈 굴릴 곳도 늘어나고 있다. 신규 고객 한정 특판금리이긴 해도 연 5% 준다는 발행어음도 눈에 띈다.
주식에 크고 작은 비중을 실어 주가 하락에 고민이 큰 시기라는 사실엔 변함이 없겠지만, 그래도 시야를 넓혀보자. 쌀쌀한 가을이 오면 살이 오른 전어에 눈이 가듯, 주가 급락기에는 통통하게 살이 오르는 투자 상품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