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크셔 통신] ‘천재 CEO’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그룹에서 근무하는 유일한 한국인인 필자가 바라본 워런 버핏은, 위대한 투자자이기 이전에 탁월한 경영자다. 그의 철저한 경영 방식은 투자 원칙과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체계로 이어진다. 버핏의 가치평가 원칙이 현장 경영과 기업 문화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살펴보며, 그가 왜 단순한 투자자가 아니라 성공적인 경영자인지 한국 독자에게 전하고자 한다. ― 버핏클럽
워런 버핏을 주식 투자자로만 이해한다면 그의 성공을 절반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버핏은 그저 ‘투자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의 재산 대부분은 다양한 종목으로 구성된 주식 포트폴리오가 아니라 버크셔 해서웨이라는 단 한 종목의 주식에 집중되어 있다.
버핏은 낡은 섬유 공장을 운영하던 버크셔 해서웨이라는 회사를 1,000조 원이 넘는 시가총액을 지닌 거대 그룹으로 키워낸 엄연한 CEO다. 따라서 버핏의 성공을 이해하기 위해선 그를 천재적인 투자자가 아니라 천재적인 ‘경영자’로서 바라보아야 한다. 또 그의 투자 원칙이 주식 투자를 넘어 버크셔의 경영에까지 적용된 방식을 이해해야 한다.
버크셔는 근본적으로 재보험 회사다. 그것도 매우 성공한 재보험 회사다. 워런 버핏은 그 보험회사를 극도로 잘 운영했다. 그리고 그렇게 얻은 보험준비금(float)을 주로 기업 인수합병과 경영에 효율적으로 활용했기에 큰 부를 이룩할 수 있었다. 내가 버크셔의 보험 부문에서 직접 일하면서 깨달은 점이 있다면, 버핏의 가치투자 원칙은 주식 투자만이 아니라 보험사업 경영의 핵심 원칙에도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버핏의 주주서한에 나와 있듯 그의 가치투자 원칙은 한 가지로 정의할 수는 없다. 저평가 매수, 인내심, 장기투자, 평판과 윤리성, 해자 등 여러 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매 순간의 투자와 경영에 유기적으로 작용한다. 그렇다면 버핏은 장기투자, 근본적으로는 장기적 관점이라는 원칙을 버크셔의 경영에 어떻게 적용해왔을까?
버크셔는 100년 뒤를 바라본다
워런 버핏의 유명한 어록인 “10년을 투자할 게 아니면 10분도 투자하지 않는다”라는 말은 그의 장기투자를 상징하는 문구다. 하지만 버핏은 투자뿐만 아니라 보험사 경영 또한 장기적 관점으로 접근한다. 그는 경영의 영속성을 상정하며 실제로 보험 언더라이팅 원칙에도 철저히 장기적 관점을 적용한다. 언더라이팅은 클라이언트의 리스크를 평가하여 보험 계약의 인수와 조건 여부를 판단하는 과정이다. 다만 투자에는 ‘수익’을 중심으로 장기적 관점을 적용한다면, 보험에는 ‘리스크’를 중심으로 적용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버크셔의 보험 언더라이팅은 무려 100년의 기간을 가정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캘리포니아와 루이지애나주의 재물보험 계약 인수를 보면 그 원칙을 확인할 수 있다. 버크셔는 전담 과학팀을 따로 두고 2025년의 LA 화재 같은 대형 화재나 2005년의 카트리나 같은 대형 허리케인이 향후 100년간 발생할 확률까지 계산하며 꼼꼼하게 리스크를 관리한다.
보험업 자체가 워낙 장기적인 비즈니스인 것을 고려하더라도 버크셔는 바라보는 시간이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듯 100년 뒤까지 바라보는 장기적 관점은 보험 경영, 본질적으론 보험의 리스크 관리에 어떻게 적용될까?
우선 버크셔의 보험 부문은 가이코(GEICO)를 제외하면 대부분 재보험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가 속한 재보험 계열사인 BHSI(Berkshire Hathaway Specialty Insurance)도 개인이 아니라 기업이나 정부를 상대한다. 그래서 주로 규모가 크거나 복잡한 포트폴리오를 다루게 된다. 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property’, 즉 재물보험이다. ‘property’를 부동산이 아닌 ‘재물(財物)’이라고 번역하는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property는 부동산뿐 아니라 각종 기계, 설비 그리고 해상보험까지 커버하기 때문이다.
일반인의 재물 피해를 다루는 화재보험과 달리 기업이나 정부의 재물 피해를 다루다 보니 결국 범위가 매우 넓거나 혹은 보장하는 규모 자체가 매우 크다. 화재보험보다 복잡성이 높고 보장 규모도 높은 만큼 리스크 모델링(Risk Modelling)을 계산하는 게 더욱 중요하다.
계산할 수 없는 리스크를 계산한다
리스크 모델링 과정에서 손해보험은 건강보험이나 자동차보험과는 달리 대수(大數)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바꿔 말하면 비슷한 특성을 가진 데이터를 많이 확보하기 어렵기에 리스크를 통계로 보거나 패턴을 파악하는 게 매우 힘들다. 손해보험 중에서도 재보험이나 E & P(전문가·경영인 보험), 보증보험처럼 특이한 건 당연하고 부동산보험 또한 세상의 모든 부동산이 모두 다른 입지와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렇기에 손해보험에선 각각의 사례마다 리스크 판단 전문가인 언더라이터가 개입하는 것이 필수적이며, 보험계리사의 역할은 비교적 제한적이다. 다만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화재보험은 요율이 고정된 보험료와 명확한 보장 상한선을 가진다. 그래서 대부분 온라인으로도 간단하게 가입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평소에 여행자 보험을 들듯이 말이다. 그러나 손해보험은 대수의 법칙이 적용되기 어렵고, 사례마다 직원을 파견해 조사하면 비용 효율도 떨어진다. 그 결과 보상은 대체로 대략적인 범위 안에서 제한적으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버크셔처럼 일반 손해보험사보다 훨씬 크고 다양한 리스크를 보장하는 보험사는 손해보험에도 리스크 모델링을 활용할 수도 있다. 보험 가입의 대상이 되는 포트폴리오의 크기 자체가 각종 모델링의 효율을 극대화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소상공인 점포의 화재 사건 하나를 위해 직원을 파견하는 건 비용 효율성이 없다. 하지만 반도체 공장의 리스크를 분석할 때는 지진이나 홍수 리스크만 추가로 더 정확히 계산해도 수익이 극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 동네 주택의 태풍 피해액 추정을 위해 기상청 자료를 뒤져보는 건 매우 비효율적이다. 하지만 항만이나 석유화학단지 전체의 예상 보험금을 산정하는 경우라면 태풍 리스크 하나를 분석하는 데 슈퍼컴퓨터를 동원하더라도 충분히 투자할 만한 가치가 생긴다.
버크셔는 홍수, 태풍, 산불, 지진 같은 자연재해를 대상으로 자체 수치 모델을 운영하고 있으며, 과거 100년과 향후 100년에 걸친 피해 규모나 범위까지 계산하고 있다. 계산을 위해 정부 문서부터 건설사 리포트까지 긁어모을 수 있는 자료는 전부 모아서 입력하는 건 물론이다. 이 데이터 수집과 조사 과정은 AI로 대체할 수 없고 대부분을 사람의 손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보험사는 웬만한 국가의 기상청보다 기상 리스크와 재해 양상을 더 정밀하게 파악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일례로 버크셔의 한 계열사에 근무하는 기후 모델링 과학자 수는 대한민국 기상청의 수치모델링센터 인력보다 많다. 다른 글로벌 손해보험사도 비슷할 것이다. 대체로 수익을 내야 하는 사기업이 공공기관보단 더욱 적극적으로 투자하기 때문이다.
못해도 10년에서 길게는 100년을 바라보고 만든 모델링은 타 보험사가 계산할 수 없는 리스크를 예측하게 해준다. 덕분에 버크셔의 보험 계약당 수익성은 크게 높아지고 이렇게 향상된 리스크 관리 능력과 자본 건전성은 다시 보험의 신뢰를 높여주는 선순환 구도를 만든다. 이러한 선순환 구도 위에서 버크셔의 재무 건전성, 나아가 장기적 관점이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100년을 바라보는 장기적 관점으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리스크를 끝까지 파악해내는 버크셔의 경영 전략은, 클라이언트가 다른 보험사들이 처리하기 곤란할 정도로 크고 복잡한 계약을 가져올 수 있게 한다. 이런 계약을 통해 만들어낸 현금흐름은 다시 정교한 리스크 모델링에 투자할 재원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