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크셔 통신 2] 버크셔에 해고가 없는 이유
버크셔 해서웨이 그룹에서 근무하는 유일한 한국인인 필자가 바라본 워런 버핏은, 위대한 투자자이기 이전에 탁월한 경영자다. 그의 철저한 경영 방식은 투자 원칙과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체계로 이어진다. 버핏의 가치평가 원칙이 현장 경영과 기업 문화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살펴보며, 그가 왜 단순한 투자자가 아니라 성공적인 경영자인지 한국 독자에게 전하고자 한다. ― 버핏클럽
미국은 자유로운 해고로 유명한 나라다. 어느 날 출근해서 출입 카드가 인식되지 않아 물어봤더니 “오늘부로 해고 처리되었습니다”라는 답을 들었다는 에피소드도 잘 알려져 있다. 이메일 한 통으로 해고 통보를 받았다는 이야기도 미국에서는 흔하다. 심지어 공무원도 자르는 나라가 미국이다. 이렇듯 고용시장이 유연한 미국은 혁신에 강한 반면, 직원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그로 인해 직원들이 단기적 시야에 빠진다는 단점도 있다.
그런 면에서 버크셔 해서웨이는 미국에서 매우 특이한 회사로 여겨진다. 직원들에게 미국 회사답지 않은 엄청난 안정성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워런 버핏 회장의 장기투자 원칙은 필자가 볼 땐 투자만이 아니라 인재 정책에도 적용된다. 버핏 회장은 자신의 투자 원칙처럼 10년간 같이할 사람이 아니면 10분도 같이하지 않지만, 한번 뽑아서 믿고 맡겼으면 10년, 아니 그 이상도 함께하려는 자세로 임한다. 이러한 철학은 버크셔 조직에 구조적으로 녹아들어 있다.
버크셔 해서웨이는 자회사를 매각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자회사 매각뿐만 아니라, 회사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구조조정도 거의 하지 않는다. 다른 사모펀드와 달리 버크셔의 기업 인수에 부정적인 인식이 적은 이유는, 무엇보다도 기업을 인수하고도 구조조정을 하지 않으며 인사에도 간섭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수한 회사뿐 아니라 직접 세운 보험 분야 자회사 내에서도 구조조정은 거의 하지 않았다. 코로나 시국에도 필자가 듣기론 불경기 때문에 잘린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아무리 보험회사가 보수적이라지만, 그럼에도 어떤 면에선 거의 공무원 이상의 안정성을 보장해주는 건 다소 특이한 부분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버크셔의 인사 정책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버핏도 엄연히 기업가인 만큼, 본인의 재산을 기부하듯이 기업 경영에도 선심을 써서 이렇게 안정성을 보장해주는 건 절대 아니다. 진짜 이유는 버핏의 투자와 경영의 원칙, 즉 ‘장기적 관점’과 ‘리스크 관리’다. 안정성과 리스크 관리가 대체 안정적인 고용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단기 실적 경쟁 하지 않는다
만약 버크셔 해서웨이가 월가의 여러 금융회사나 몇몇 보험사들처럼 직원들에게 실적 경쟁을 시킨다고 해보자. 고성과자에겐 승진과 인센티브를 주고, 저성과자에겐 월급 동결, 좌천 혹은 해고 압박을 줄 것이다. 이러면 직원들은 당연히 다른 금융회사나 보험사들처럼 어떻게든 실적을 올리려고 경쟁을 벌일 것이다. 그러면 무리해서라도 고객사들과 보험계약을 맺어서 성과를 올리려고 할 것이고, 구체적인 성과를 보여줄 수 없는 리스크 관리 부서는 한직이 될 것이다. 많은 계약을 인수한 언더라이터는 높은 연봉을 받겠지만, 신중하게 인수를 결정하는 언더라이터나 리스크 관리팀 직원은 사내 이동이나 이직을 꿈꾸거나 별 의욕 없이 일하게 될 것이다. 물론 실적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예 잘릴 수도 있다.
인센티브 구조를 이렇게 설계하면 단기적으론 매출을 펌핑할 수도 있다. 하지만 보상 체계를 이렇게 설계하면 말단부터 경영진까지 당장 한몫 챙기기에 매몰되는 단기 성과주의에 빠질 것이다. 게다가 이런 방식을 지속하면 회사는 다른 금융권 회사들보다도 훨씬 심각한 도덕적 해이가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다른 금융권 회사나 대기업들은 수익을 최대한 많이 올려서 타사와의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평시의 경영 기조이고, 위기는 ‘블랙스완’ 정도로 취급하는 경향이 강하다. 즉, 위기는 미리 알고 대비하는 대상이라기보다는 벌어진 후에야 대처하는 특별한 사건 정도로 생각한다. 하지만 보험사에는 이런 실적 제일주의가 매우 위험하다.
왜냐하면 보험의 리스크는 한참 뒤에 터지고 실적은 당장 생겨나기 때문이다(특히 대형 보험일수록 더욱 심하다). 직원은 최대한 무리하여 높은 리스크의 계약을 마구잡이로 받아 보험 수수료 매출을 높이고, 우수한 평가와 높은 성과급을 받으면 그만이다. 어차피 한참 뒤에 리스크가 현실로 나타날 때는 이미 은퇴하거나 타 회사로 이직해 있을 확률이 크기에 책임 소재를 물을 수도 없다. 설령 찾아내서 책임을 묻는다고 해도 수천억 단위의 손실금을 그 직원에게 받아낼 수 있을 리도 없다. 그러니 직원들은 자기 이익을 위해 혹은 해고되지 않기 위해 부정직하게 일할 위험이 크다. 이렇게 되면 회사는 제 살 파먹기를 하게 된다. 그렇게 리스크는 무시하거나 덮어두고 성과에만 집착하다가 발생한 사건이 바로 2008년 AIG의 파산 위기와 구제금융이었다.
또한 매출을 기준으로 성과를 평가하고 실적 압박을 가하기 시작한다면, 성과를 올리는 게 구조적으로 힘든 리스크 관리팀엔 능력도 의욕도 없는 직원들만 모일 것이다. 그뿐 아니라 단기 실적주의가 만연한 문화에선 리스크 관리팀의 업무와 발언을 사내에서 더 이상 존중하지 않을 것이다. 빨리 수익을 올려야 하는 상황인데, 리스크를 평가하고 지적한다는 행위 자체가 자기들의 실적 향상을 방해한다고 여길 것이기 때문이다.
보험사업: 장기투자를 위한 최고의 엔진
하지만 버핏은 투자는 물론이고 경영에서도 이런 단기 실적 경쟁을 거부하는 경영인이다. 그의 명언 중에 “남들이 두려워할 때 탐욕스러워하고 남들이 탐욕스럽게 굴 때 두려워하라”라는 말이 있다. 이런 원칙은 투자만이 아니라 그의 보험 경영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버크셔 해서웨이가 공개적으로 내세우는 보험 언더라이팅 원칙 첫 번째는 가능한 모든 리스크와 손실 가능성을 분석하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적정한 가격을 맞추지 못하면 과감히 협상에서 나오라는 것이다. 리스크를 꼼꼼히 따진 후, 안전마진이 존재하는 조건으로만 보험계약을 인수하라는 의미다. 만약 보험 보상액이 예상보다 너무 높거나 리스크가 과할 때는 타 보험사와의 매출 경쟁에 매몰되지 않고 과감히 빠져나온다.
단기 실적주의를 버크셔 해서웨이에 적용하면 버핏이 설계한 버크셔의 사업 모델은 완전히 무너진다. 플로트(Float)의 지속가능성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리스크가 높은 보험계약을 마구잡이로 받으면 장기적으로 플로트, 즉 보험 여유 자금이 빨리 고갈된다. 심지어는 아예 마이너스가 되어서 버크셔의 자본금을 갉아먹을 수도 있다. 그러면 플로트로 주식에 투자하거나 신사업을 인수하는 등, 안정적인 자산으로 변동성이 큰 투자를 하는 버핏의 방식이 근간부터 뒤흔들리게 된다.
버핏이 다른 펀드보다 우수한 수익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은 플로트가 무이자 레버리지라는 점을 활용한 점도 크지만, 플로트가 장기 계약을 기반으로 한 자본이라는 점 또한 결정적이다. 다른 펀드들은 단기적인 시장의 변동성이 생기면 환매 요청이 몰려온다. 사모형 펀드도 저조한 실적을 보여주면 다음번 자금 유치에 어려움을 겪는다. 하지만 버크셔의 플로트는 최소 10년에서 길게는 수십 년짜리 계약에 기반하기에, 이러한 단기 변동성을 무시하고 원하는 투자 성과가 나올 때까지 보유할 수 있었다.
장기투자 인사 정책
앞서 언급했듯 단기 성과주의에 기반해 고성과자에겐 인센티브를, 저성과자에게는 구조조정을 적용하면 결과적으로 보험 플로트의 지속가능성은 망가진다. 플로트의 지속가능성이 망가진 상황에서 한번 경제 위기가 닥치면, 부채를 통해 문어발식 확장을 한 다른 대기업들처럼 자회사를 매각하고 보유 자산을 파는 등 장기투자의 흐름이 끊기게 된다. 단기적 변동에 흔들리지 않는 무이자 레버리지인 보험 플로트를 활용하여 지금의 투자와 인수합병의 성과를 이뤄낸 버크셔지만, 반대로 그 플로트가 무너진다면 그저 여러 기업을 아무렇게나 모아놓은 평범한 기업집단으로 전락할 수 있는 것이다. 심하게는 경제 위기 때 보유한 자회사들을 매각하며 쇠락할 수도 있다. 그렇게 한번 생겨난 악순환을 다시 회복하는 건 버핏 없이는 매우 어려운 과제가 될 것이다. 버핏이 다른 계열사는 몰라도 보험 자회사들의 리스크나 재무 건전성 관리에 가끔 개입하거나 보험 계열사들을 직접 설립하기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버크셔에선 의도적으로 단기 실적주의를 배제한다. 언더라이터들이 매출 성과를 더 냈다고 회의에서 칭찬하지도, 성과급을 더 챙겨주지도 않으며, 리스크 관리팀에도 명확한 성과를 볼 수 있는 언더라이터들과 똑같은 대우와 보상을 해준다. 그뿐만 아니라 모든 보험계약 인수엔 반드시 다방면의 리스크 관리팀들의 검토를 받도록 한다. 리스크 관리팀에도 성과를 창출하는 팀과 같은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다. 대신에 모든 직원에게 안정성을 보장해주어 장기적인 관점으로서 업무에 접근하게 하는 동기부여를 한다. 또한 사내 경쟁이나 부조리를 척결해 문화적인 이유로 유능한 직원들이 이직하는 것을 막기 위해 노력한다.
물론 사람이 하는 일인 만큼 현실적으로는 이런 부분에서 버크셔 또한 100% 완벽하지는 않다. 하지만 경영진이 안정성 보장 등 의미 있는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문화를 만들고, 구조를 설계한다는 점은 분명 다른 점이다. 버크셔 해서웨이가 다른 미국 기업과 다르게 잦은 구조조정 없이 고용 안정성을 보호해주는 인사정책은 결과적으로 버크셔의 장기적인 성공에 크게 기여해왔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