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크셔 통신 4] 기분이 태도가 되면 떠나세요

버크셔 해서웨이 그룹에서 근무하는 유일한 한국인인 필자가 바라본 워런 버핏은, 위대한 투자자이기 이전에 탁월한 경영자다. 그의 철저한 경영 방식은 투자 원칙과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체계로 이어진다. 버핏의 가치평가 원칙이 현장 경영과 기업 문화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살펴보며, 그가 왜 단순한 투자자가 아니라 성공적인 경영자인지 한국 독자에게 전하고자 한다. ― 버핏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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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는 신입사원 오리엔테이션을 찾아보기 어렵다. 미국 기업은 대규모 공채를 하지 않고 수시로 직원을 채용하기 때문이다. 저연차뿐 아니라 관리자나 임원급에서도 직원들이 자주 바뀐다. 이렇다 보니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회사 문화를 함께 공유하는 일은 매우 어려운 과제가 된다.

미국 기업은 직급과 관계없이 신규 직원을 대상으로 오리엔테이션을 실시하며, 버크셔 헤서웨이도 그런 방식을 따른다. 버크셔 역시 조직 문화 공유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을 테지만, 특별한 활동이 추가되진 않는다.

그나마 특이한 점이라면, 각 사업 부문별로 1년에 한 번 보스턴에서 열리는 사내 콘퍼런스 정도다. 이 콘퍼런스에선 정보만 오가지 않는다. 그런 의도라면 온라인 회의로 대체하는 게 회사로서도 편하지, 말단 신입사원까지 전부 호텔 숙박비와 비행기 표를 대주면서 보스턴에 모이게 할 이유가 없다.

이 콘퍼런스의 진정한 목적은 직원들 간에 같은 문화를 공유하기 즉, 상호 간에 합의된 문화와 관점을 다 같이 한자리에서 재확인하는 데 있다. 실제로 행사의 처음과 끝은 실적이나 결과보다는, 사내 문화를 강조하는 말로 열고 닫힌다.

문화는 반복될 때 비로소 정착하기 시작한다

버크셔에서는 오리엔테이션 역시 콘퍼런스와 마찬가지 접근 방식이다. 자칫 의례적 행사로 흐르기 쉬운데, OT는 첫 단추를 꿰는 상당히 중요한 이벤트다. 신규 직원한테는 회사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무엇을 기대하는지, 또 어떤 큰 틀로 운영되는지 파악하는 계기다.

내가 참석했던 오리엔테이션도 개인적으로 잊지 못할 경험이다. 회사가 직원들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외부 사업에 어떤 자세로 임하는지 깨닫게 되었고, 그 메시지가 가슴에 와닿았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여느 회사의 오리엔테이션이라면 이랬을 것이다. 새로 합류한 '여러분'이 얼마나 우수한지, 우리 회사는 또 얼마나 탁월한지 말할 것이다. 그다음은 그 사실을 뒷받침하는 매출이나 실적을 자랑하거나 업계 순위 공표가 뒤를 잇기 쉽다. 혹은 앞으로 얼마나 잘해내겠다는 경영진의 야심 찬 비전이 배치된다.

그 과정에서 ‘혁신이나 최고를 추구한다’ 같은 문장이 들어갈 수도 있고, AI나 글로벌 같은 스케일이 커 보이는 단어를 쓸 수도 있다. 더 공격적이라면 우수 팀을 선정하거나, 대놓고 매출 얼마 돌파라는 식으로 자랑한다든지 경쟁사를 이기자는 노골적인 문구도 단골이다.

버크셔에서는 실적보다 먼저 맞춰야 할 기준이 있다

버크셔 행사에서는 오리엔테이션이든 콘퍼런스가 되었든, 그런 공격적인 문구는 찾아볼 수 없다. 실적이나 결과에 초점을 맞추는 행위는 여태껏 경험하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참여한 오리엔테이션과 콘퍼런스가 벌써 다섯 차례는 되는 것 같지만, 단 한 번도 그런 인상은 받아 본 적이 없다.

물론 연간 콘퍼런스인 만큼, 결과를 발표하는 시간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흘에 걸친 콘퍼런스에서, 결과 발표 시간은 10분을 넘지 않는다. 전반적으로 내가 속한 사업 부문인 재물·재보험(Property Insurance & Reinsurance)에서 어느 정도 매출과 수익이 나왔고, 연간 대비 어떻다는 것을 짧게 언급하고 넘어가는 수준이다. 촉진이나 경각심을 주려는 목적은 없고, 그저 정보를 알려준다는 느낌에 그친다.

참여자 또한 콘퍼런스 때 실적이 좋아졌다고 기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태풍이 터져서 실적에 손해가 났다고 침울해하거나 실망하는 사람도 없었다. 버크셔는 보험에 있어 장기적인 관점을 견지하는 만큼, 연간 실적 변동을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보험은 다른 사업과 구조적으로 차이가 크다. 마구잡이로 계약을 인수하면 당장 큰 이익을 볼 수 있는 반면, 십 년 전 계약한 보험이나 태풍 하나로 순식간에 적자가 날 수도 있다. 공격적으로 매출을 강조하는 문구는 역효과를 부르기 쉽다.

윤리와 문화를 직접 챙기는 CEO

버크셔 행사에서 마케팅 용어를 쏟아붓지 않는다고 해서 점잖고 심심한 말만 전하는 건 아니다. 상호 경쟁적인 분위기나 실적을 독촉하는 분위기는 상당히 절제하지만, 가장 중요한 시간대에는 윤리와 문화에 관해 가장 중요한 사람인 CEO가 직접 발표한다. 다른 시간대와 달리, CEO는 꽤 적극적으로 약간 살벌한 단어까지 사용한다.

CEO나 COO는 우리 회사는 평소에 서로를 어떻게 대하고, 외부 클라이언트나 협력업체를 어떻게 대하고, 어떤 문화를 지향한다는 걸 명확히 짚고 넘어간다. 또한 문화적인 부분에 대해서만큼은 자부심을 갖는 멘트를 잊지 않는다. 매년 반복되는 콘퍼런스지만, 문화에 대한 소개는 빠뜨린 적이 없으며, 심지어 월간 회의에서도 자주 언급하고는 한다.

“기분이 태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

‌버크셔가 강조하고 자부심을 갖는 그 문화란 무엇일까? 콘퍼런스에서는 장기적인 관점, 열심히 일하는 문화, 전문성, 열정 등 다양한 요소를 언급한다. 하지만 그 모든 특징들을 크게 분류하자면, 결국 ‘존중’과 ‘윤리’로 모아진다. CEO는 매출을 올리라는 압박은 가하진 않지만, 사내외를 존중하는 문화에 대해서만큼은 매우 강조한다. 다음은 그 일부다.

“전날에 개인적으로 어떤 힘든 일이나 짜증 나는 일을 겪었다면, 회사에서 조금 감정이 표출될 수도 있겠지요. 인간적으로 충분히 이해할 만한 일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사소한 어투의 변화라도, 존중을 깨는 것은 우리는 허용할 수 없습니다. 만약 그런 개인적인 상황에 대해 주변의 이해를 바란다면, 그런 태도가 허용되는 회사로 옮기는 게 더 나은 선택일 것입니다.”

위 내용은 내가 콘퍼런스에서 CEO가 하는 말을 직접 들은 말을 옮긴 것이다.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솔직히 처음에 들었을 때는 여러 조직에서 흔히 그렇듯, 사내 교육 시간에만 짚고 넘어가는 내용이고, 실제 회사 생활에선 그렇지 않은 일들이 빈번히 일어나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이후 수년간 근무하면서, 저 말이 허언이나 공염불이 아니라는 것을 절감할 수 있었다.

실제로 지난 수년간 근무하면서 존중받지 못한다는 감정이나 불편감을 단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다. 다른 회사들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부 알지는 못하지만, 아마도 회사 생활을, 그것도 신입사원 같은 실무자급으로 수년간 하면서 단 한 번도 불편감을 느끼지 않거나 감정이 상하는 일을 겪지 않기란 대다수 회사에선 아마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내가 직접 겪어본 바로는, 버크셔에선 그런 일이 실제로 가능했다.

좋은 문화는 의도적으로 설계해야 한다

물론 버크셔도 대기업인 만큼 조직 전체가 완벽한 것은 아니며, 계열사 어딘가에선 부당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 버크셔는 여러 회사들을 인수하며 성장해 온 회사니, 기존의 문화가 남아있는 타 계열사에서 어떤 문화나 제도가 작동하는지는 함부로 단언할 수 없다. 그러나 BHSI(Berkshire Hathaway Specialty Insurance)처럼 버크셔가 인수합병이 아닌 직영으로 설립한 계열사의 경우, 적어도 내가 주변에서 직접 목격한 예외는 한 번도 없었다. 참고로 나는 꽤 내성적인 편임에도 말이다.

다시 말해, 사람이 모여 일하는 조직인 만큼 완벽하지 않겠지만, 존중이나 윤리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어느 정도 사내 조직의 말단까지 곳곳에 스며들어 자리 잡은 것은 분명하다. 혹시나 해서 다른 미국 회사에서 일하다가 온 직원들에게 넌지시 물어보아도, 기업 문화가 특이할 정도로 온화한 편이라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따라서 일반적인 미국 회사들이 전부 이런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예컨대 실리콘밸리나 투자은행 등에는 훨씬 경쟁적이고 유해하고(toxic), 압박적인 문화를 가진 걸로 유명한 회사도 많이 있다.

결국 이런 버크셔의 사내 문화는 미국 문화권에선 자연히 생겨나는 결과가 결코 아니고, 버크셔가 의도적으로 설계한 것이라고 해석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 적게는 수천 명(계열사), 많게는 수십만 명을 다루는 그룹에서 “존중의 문화”를 어느 정도 구현해 냈다는 것은, 사내 문화와 존중은 개개인의 성격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로서 만들어 낼 수 있고, 무엇보다 경영진의 의지가 중요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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