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의 주식 공부 34] 이토록 혼란스러운 세상
주식 투자자가 알아야 할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지식을 담아 ‘최소한의 주식 공부’를 연재합니다. 주식이라는 자산의 근본적인 실체에서 시작해, 의사결정의 주요 원칙과 피해야 할 함정에 대해 홍진채 라쿤자산운용 대표가 독자 여러분과 함께 고민합니다. ― 버핏클럽
요즘 사람들을 만나며 종종 듣는 질문이 있습니다.
“세상이 지금처럼 혼란스러울 때가 또 있었나요?”
뭐 당연히 전쟁과, 급격한 시장의 변동성 때문에 이런 마음이 드는 건 이해는 합니다만, 글쎄요. 지금이 전에 없이 혼란스러운 시기일까요? 저는 아예 그런 질문을 떠올리지도 않은 채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저는 역사책 읽는 걸 좋아합니다. 오늘은 역사 이야기를 좀 해보겠습니다. 지금이 역대급으로 혼란스러운 세상이 아니라고 여기는 분은 이 글을 패스하셔도 됩니다. 아마 다 알고 계시는 이야기일 겁니다.
렛츠고
1914년. 100년쯤 전으로 시계를 돌려볼까요. (너무 멀리 간 거 아니냐고요? 그때도 주식시장은 매우 활발하게 있었습니다. 서구에서는 19세기에 이미 ‘공매도 세력과의 대결’ 같은 개념이 있었습니다.) 오스트리아 황태자의 암살로 촉발된 강대국들의 선전포고, 참전, 사망자 2,000만 명. 서구식 제국주의의 말기에 벌어진 참극입니다. 문명화되었다고 자부하던 그들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었습니다. 전쟁의 참상이 너무나 심각했기에 승전국은 패전국에 호의를 베풀 수 없었습니다. (나폴레옹 전쟁의 사후 처리에서는 패전국을 너무 압박하면 오히려 불안정을 키운다는 개념에 승전국들이 동의했습니다. 그 교훈을 제1차 세계대전 때는 잊어버린 거죠.)
1918년. 전쟁의 결과 세 개의 제국이 와해되었고, 전 세계를 호령하던 최강 제국은 완연히 내리막길에 접어들었습니다. 또 하나, 러시아 제국은 전쟁이 끝나기 전에 이미 붕괴되고 소련으로 재탄생했습니다. 제국의 식민지로 있던 수많은 나라가 독립했고, 매년 새로운 나라가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전염병이 함께 왔습니다. 전 세계 인구의 3분의 1이 감염되고 5,000만 명 이상이 사망했습니다.
1923년. 패전국 독일(바이마르 공화국)에는 하이퍼인플레이션이 발생했습니다.
1929년. 대공황이 들이닥쳤습니다. 두 집 건너 한 집이 실업자가 되었습니다. 차라리 땅을 팠다가 다시 덮어서라도 고용을 창출하라는 ‘괴이한’ 경제 이론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1914년 전쟁을 일으켰던 그 국가는 극우화되어 다시금 전쟁 국가를 향해 갔습니다.
1939년. 또 한 차례 수많은 열강이 참여하는 전 지구적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세계적 분쟁이었습니다. 이번에는 7,000만 명이 죽었습니다. 당시 전 세계 인구는 약 23억 명, 인류의 3%가 사망했습니다.
1945년. 전쟁이 끝나는 동시에 냉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인류는 핵무기를 가졌습니다. 한 인간이 버튼 하나를 누름으로써 한 국가를 소멸시켜버릴 수 있는 힘을 갖게 되었습니다. 1949년. 냉전의 상대방도 핵무기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1950년.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전쟁이지요. 한반도에 전쟁이 발발했고, 국제연합이 최초로 의미 있는 형태의 다국적군을 파견했습니다.
1955년. 베트남에서 내전이 발발했고, 20년간 지속됐습니다.
1962년. 인류는 핵전쟁 직전까지 갔다가 극적으로 되돌아왔습니다.
1968년. 프라하의 봄. 파리 68혁명. 마틴 루터 킹·로버트 케네디 암살. 베트남 구정 공세. 모두 한 해에 일어났습니다.
1971년. 닉슨 쇼크.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국제 통화 질서가 붕괴되었습니다.
1973년. 1948년, 1956년, 1967년에 이은 네 번째 전쟁 끝에, 중동은 석유를 무기화합니다. 이제 서구는 중동에서 마음대로 석유를 채굴하여 사용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1979년. 중동에서 미국에 가장 가까운 정권 중 하나였던 이란 팔레비 정권이 축출되고, 이슬람 원리주의로 무장합니다. 베트남 전쟁에 이어 연이은 실책으로 국제사회에 대한 미국의 통제력이 의심받고 미국 스스로도 무너지는 1970년대였습니다. 냉전에서 자유진영이 패배한다는 시나리오가 꽤 유력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1980년. 이라크가 이란을 침공합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고, 천안문에서는 민간인이 학살당했습니다.
1990년.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합니다.
1991년. 소련이 붕괴되었습니다. 냉전이 끝났습니다.
1997년. 아시아인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연도입니다. 국가 부도의 날.
2001년. 세계 최강국 미국이 본토에 테러를 당합니다. 납치된 비행기가 뉴욕의 상징적인 건물에 충돌하고, 3,000명이 사망했습니다.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에 돌입합니다.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합니다. (주동자 오사마 빈 라덴은 10년간의 추적 끝에 사살되었습니다.)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했습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자본주의가 붕괴하고 우리가 아는 모든 금융 시스템이 마비될 수 있었던 시기입니다.
2010년. 아랍에서 혁명이 번져나갑니다. 국민들의 시위로 튀니지, 이집트, 리비아, 예멘의 대통령이 교체되었습니다. 현재까지도 그 여파가 있습니다. 시리아의 대통령이 2024년까지 버텼습니다. 시리아 난민은 유럽의 분열을 촉발했습니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반도체 밸류체인이 무너졌습니다.
2014년. ISIS를 기억하십니까. 이슬람 무장단체가 이라크와 시리아의 일부 지역과 송유관을 점거했습니다. 국가를 선포하고 경제를 운영하기까지 했습니다. 그해에 러시아는 크림반도를 병합했습니다.
2016년. 영국이 EU에서 탈퇴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트럼프가 처음으로 대통령에 당선된 해이기도 합니다.
2020년. 여기서부터는 다들 아시죠? 역병이 돌고 전 세계 공장이 문을 닫았습니다. 아이들은 친구들의 마스크 벗은 얼굴을 모른 채 학교를 다녔습니다.
2022년. 자, 여기서부터 ‘이토록 혼란스러운’에 포함되는 시기일 겁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고, 챗GPT가 대중에게 공개되었습니다. 2024년에는 트럼프가 다시 당선되었고, 2026년에는 미국이 남미 대통령의 거처에 침입하여 그를 체포하고, 이란을 선제공격했습니다.
당연히 최근 4년간의 사건도 유의해야 할 큰 사건이지만 그 이전 100여 년, 평화로웠나요? 아프리카, 남미, 중앙아시아 등의 비극을 제외하고도 이만큼이나 굵직한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역사를 공부할 때마다,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벨 에포크 시기의 유럽이나 가장 평화롭던 시기의 조선에 태어날 수 있다 하더라도, 저는 21세기의 대한민국을 선택하겠습니다. 2026년의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건 호모 사피엔스로 태어난 전체 인구 중에서 상위 0.1% 이내의 행운입니다.

왜 우리는 이토록 혼란스럽게 느끼는가
우리가 지금을 가장 혼란스럽게 느끼는 건 여러 원인이 있습니다. 최근성 편향, 매체의 발달, 금융시장의 발달 등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인간은 최신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행동경제학 분야의 여러 연구 결과로 드러나 있습니다. 아무래도 최신의 이벤트가 지금의 나에게 더 많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더 정교하게 바라보고자 하는 태도가 유전자에 각인되었을 겁니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겠죠. 무슨 일이 벌어지든 “아이구, 옛날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어~” 하다가는 변화에 휩쓸려 죽어버렸을 겁니다.
인터넷의 발달로 우리는 세계 각지의 정보를 빠르게 접할 수 있습니다. 특히나 소셜 미디어에는, 다수가 관심을 가지는 뉴스는 더 많은 사람에게 노출되는 포지티브 피드백 루프(positive feedback loop)가 존재합니다. 그리고 내 취향에 맞는, 내가 관심 가질 만한 정보를 선별해서 보여주면서 편향을 더욱 강화하는 루프도 존재합니다. 내가 세상이 혼란스럽다고 생각할수록, 혼란스러움을 지지하는 증거 자료들이 내 눈앞에 계속 나타나는 거죠.
그리고 그런 혼란스러움으로부터 돈을 버는 회사들, 사람들이 있습니다. 계속 자극적인 뉴스를 던지고, 충동적인 어떤 행동(자산 매매든 소비든)을 부추기면서 돈을 버는 일군의 집단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모든 일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물론 최근 일련의 사태들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무시하고 넘길 일은 절대 아닙니다. 과거에 얼마나 심각한 일이 있었든 간에,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현재의 이슈가 있는 거죠. 인류가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대한민국은 북한의 지도자가 이성의 끈을 놓지 않았다는 얕은 지지대 위에서 이 모든 번영을 구가하고 있습니다. 억지력은 우리의 힘을 상대방이 인지하고 있을 때에만 힘으로 작용합니다. 우리의 방공망이 잘 작동하길 빕니다.)
저는 국제 정세를 바라볼 때, 세부적인 시나리오를 예측하고 특정 시나리오에 베팅하지 않습니다. 단지 ‘세상이 망하냐 아니냐’만 봅니다. 세상이 망한다면 주식 투자 따위가 문제가 아닐 것이고, 세상이 망하지 않는다면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괜찮은 주식들이 알아서 돈을 벌어줄 것이기 때문에 특별히 할 일이 없습니다.
‘세상이 망하냐 아니냐’를 판별함에 있어서 ‘역량과 의도’라는 렌즈를 사용합니다. 국가의 세세한 의사결정 과정이나 관계, 지도자의 의중을 모두 파악할 수는 없습니다. 그걸 파악한다고 될 일도 아니고요.
역량이라는 건 국가가 사용할 수 있는 물리적, 경제적, 정치적 힘을 말합니다. 이 힘들이 잠재적인 선택지, 외교나 협상에서 흔히 말하는 ‘카드’가 됩니다. 인도는 중국에 대해 히말라야 수원의 수로를 돌린다는 선택지가 있습니다. 일본은 한국에 대해 반도체 소재 수출을 금지한다는 선택지가 있습니다. 러시아는 유럽에 대해 가스관을 잠근다는 선택지가 있습니다.
역량은 의도에 우선합니다. 역량이 없는 국가는 협상에 나설 수 없습니다. 그저 상대방의 호의, 선의에만 기대어야 합니다. 제삼자가 무언가를 판단할 여지가 지극히 제한적입니다. (내려놓을 카드가 없다는 스스로의 위치를 인식하고 있느냐, 호의를 베풂으로써 무언가를 얻을 수 있는 주변국이 있느냐 정도가 판단 대상이겠죠.) 역량이 없는 국가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습니다.
역량이 있는 국가에 대해서는 의도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습니다. 가지고 있는 카드 중에서 어떤 카드를 사용하고 어떤 카드를 사용하지 않느냐를 보면서 의도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제 미국-이란 전쟁으로 가볼까요. 3월 중순이 지나면서 저는 이 전쟁은 ‘제한전’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양국이 모두 어떤 ‘선’을 넘지 않는 형태의 게임을 벌이고 있다는 뜻입니다.
전쟁은 확전(escalation)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동원령, 병력 배치, 무력 시위, 미사일 발사, 공군·해군 타격, 지상군 상륙, 인프라 파괴, 민간인 학살, 핵무기 사용까지, 한 줄로 그을 수는 없지만 피해의 강도 및 비가역성 측면에서 전쟁의 단계를 스펙트럼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3월의 이란전은 어땠나요? 세상 일에는 종종 ‘눈에 보이는 것’보다는 ‘눈에 보여야 하는데 안 보이는 것’, ‘있을 법한데 없는 것’이 진실을 가리키는 경우가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일도 여러 가지가 많았지만, 있을 법한데 일어나지 않은 일은 무엇이었나요?
카르그섬의 유정 시설을 폭파해버린다 → 이란의 경제 붕괴
이란을 핵으로 공격한다 → 국토 초토화, 민간인 학살, 방사능 오염
담수화 시설을 전면 파괴하여 식수를 없앤다 → 민간인 아사
미국 본토 혹은 타국에서 미국 민간인에게 테러한다 → 9.11의 악몽을 자극
이런 선택지는 물리적으로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아직까지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압력이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일어난 일(군사 및 정치 지도자 사살, 해협 봉쇄, 군 시설 타격, 여론전)은 대부분 가역적인 타격을 줍니다. 물론 사망한 인원의 생사는 비가역적인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리고 의도치 않은 사망자도 발생했지만, 의도한 사건에 한정한다면 가역적인 타격을 주는 이벤트 위주로 벌어졌습니다. 봉쇄한 해협은 봉쇄를 해제하면 복구됩니다. (기뢰 소해에 시간이 걸리겠지만 가능은 합니다.) 올라간 유가는 물류가 재개되면 몇 달 내에 가라앉을 수 있습니다. 파괴된 군 시설은 다시 지으면 됩니다. (민간인 사망은 어떤 경우에도 되돌릴 수 없는 비극입니다만…)
가역적인 선택을 하는 양국은 그 자체로 어떤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겁니다. 협상의 여지가 있다고요. 그리고 협상이 시작되었습니다.
협상은 원래 오래 걸립니다. 금방 끝날 수도 있고, 몇 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하고자 하는 말은, 언제 어느 시점에 협상이 타결되고 사회가 원래대로 돌아갈 거라는 예측이 아닙니다. “미국의 대통령이 미치광이라서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 이외의 다른 설명도 존재한다는 주장입니다. “미국의 대통령이 미치광이다”가 선택 가능한 유일한 설명이라면, 미국 외 모든 국가가 동맹을 맺고 미국을 압박하여 “미치광이”를 탄핵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행히도 다른 설명이 존재합니다. 어떤 설명이 다른 설명을 기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요.
예전 글 ‘매크로를 보는 이유’에서 말씀드렸다시피, 매크로를 보는 이유는 매크로를 예측하기 위해서만이 아닙니다. 굳이 예측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할 수 있는 일이 많습니다. 기업의 퀄리티를 판별하는 근거로 사용할 수도 있고, 시장의 편향을 측정하는 용도로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매크로 자체에 대해서는 ‘그래서 세상 망하냐 안 망하냐’ 정도의 질문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굳이 무언가를 예측하는 것만이 투자가 아닙니다. 예측하지 않고 현재와 과거를 차분히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하루하루를 평온하게 보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