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투자자가 알아야 할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지식을 담아 ‘최소한의 주식 공부’를 연재합니다. 주식이라는 자산의 근본적인 실체에서 시작해, 의사결정의 주요 원칙과 피해야 할 함정에 대해 홍진채 라쿤자산운용 대표가 독자 여러분과 함께 고민합니다. ― 버핏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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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은 모두가 두려워하는 폭락과 고통의 대명사입니다. 주가지수가 90% 폭락하고, GDP가 30% 감소하고, 실업률이 25%까지 치솟고, 1만 개 가까운 은행이 문을 닫았던 바로 그 사건입니다.

주식시장에 참여하는 투자자가 많아지고 변동성이 극심해진 만큼, 주가가 급락할 때마다 대공황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일은 점점 더 많아질 것입니다. 오늘은 대공황이 무엇이었는지, 우리는 실제로 무엇을 두려워해야 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주가 하락은 근본 원인이 아니다

아래는 다우존스지수 장기 차트입니다.

다우존스지수 로그 차트(1918~2026)

1920년대가 끝날 즈음, 유난히 급하게 하락한 지점이 보입니다. 100년 가까이 과거의 하락 폭이 아직도 이렇게 유의미하게 차지한다는 건 당시의 심각한 분위기를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해줍니다.

여기서 아주 조금만 더 살펴보면, 1929년 10월의 주가 급락을 대부분 대공황의 시초로 이야기합니다. 9월 고점을 찍고 약 두 달 만에 주가가 47% 하락했습니다. 많은 투자자가 파산했습니다. 특히 그 직전, 저명한 경제학자였던 어빙 피셔가 “주가는 장기적으로 지속될 고원 지대에 도달했다(Stock prices have reached what looks like a permanently high plateau)”라고 한 말은 두고두고 조롱과 비난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후 피셔는 대공황을 분석하여 부채-디플레이션 이론을 내놓습니다. 이 모델은 현재에도 유효합니다. 훌륭한 학자입니다.)

이런 이야기들에서 우리는 1929년 10월의 주가 급락이 트리거가 되어, 사람들이 패닉에 빠져 자산을 매각하고 안전자산을 찾고, 실물 경기가 위축되고, 사람들이 실직하고, 돈이 없어서 소비를 못 하고, 기업 실적이 나빠지고, 또 해고하고, 이런 악순환이 일어난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런 연쇄 사고는 매우 자연스럽지만 실제로 일어난 일은 다릅니다.

1929년 급락 직후로 차트를 끊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다우존스지수(1929년 급락 직후)

어떤가요? 직관적으로 생각해봅시다. 모든 걸 던지고 도망가고 싶은 공포감이 느껴지시나요?

1930년 4월까지 주가는 바닥에서 약 50% 반등했습니다. 고점 대비하면 여전히 상당한 충격이 남아 있는 상태지만, 과거 장기간의 추세가 꺾였다고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여전히 미국은 강력하고, 장기간 상승이 있었으니 이 정도 하락은 맞이할 수 있지, 정도가 일반적인 판단일 겁니다. 레버리지를 쓴 공격적인 투자자들이 상당한 타격을 입었겠지만, 앞으로 다가올 파국을 예상하기에는 근거가 충분치 않았습니다

실제로 당시 많은 전문가기 “공황 끝”을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세상은 멸망했습니다.

다우존스지수(이어진 하락)

1930년 중반부터 1932년 여름까지 주가는 끝없이 하락했고, 1929년 고점 대비 -89% 수준에서 바닥을 찍었습니다.

단지 1929년의 하락만으로는 이런 붕괴를 초래할 수 없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1987년 블랙 먼데이 때는 하루 -22% 하락해서 단기 충격으로 보자면 1929년에 버금가는 낙폭을 보였지만, 실물 경기 침체 없이 회복되었습니다.

‘대공황’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단순히 주가 급락만으로는 안 됩니다.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잔뜩 쌓여 있어야 합니다. 쌓인 게 많아야 터질 것도 많습니다. 그게 무엇이었을까요?

실물시장의 대호황, 새로운 시대

다우존스지수는 1921~1929년 기간에 약 6배 상승(수익률 약 500%)했습니다. 무려 8년간의 강세장이었습니다. 이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모두 알다시피 미국은 1차 세계대전의 가장 큰 수혜국이었습니다. 유럽 대륙에서 모두가 참여하는 전쟁이 벌어졌을 때 미국은 말 그대로 ‘강 건너 불구경’ 상태였고, 그걸 넘어서 소방차, 즉 무기와 자원을 수출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1800년대 후반에 미국은 이미 산업 생산 역량에서 전 세계 최강 국가가 되어 있기는 했습니다만, 그 역량은 유럽에 많은 빚을 지고 있었습니다. 유럽의 자본과 기술, 인력을 도입하여 미국의 산업 생산이 이루어졌고, 미국은 순채무국이었습니다. 전쟁을 통해 미국은 빚을 갚고도 남아서 순채권국, 전 세계 가장 많은 금 보유국이 되었습니다. (덕분에 전후 처리에서도 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고, 이는 이후의 새로운 비극으로 이어졌습니다.)

전쟁이 종료되고 인력의 과다 공급과 전염병 등으로 2년간 침체가 있었지만 이후 미국은 다시 성장을 거듭합니다. 1920년대 미국 제조업 생산성이 연 5~6% 성장했습니다. 장기 평균의 2~3배에 가까운 수치였습니다. (1920~1921년의 침체는 별다른 대응 없이 회복되었는데 사실 도시와 산업 쪽에 편중된 회복이었고, 농업은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이게 나중의 대공황의 씨앗이 됩니다.)

당시 성장의 원동력은 다양하지만 크게 두 가지를 꼽자면 자동차와 전기의 보급입니다. 1920년대에 포드 모델 T가 대중화되었습니다. 자동차가 지금이야 성숙산업이지만, 초창기 자동차는 철강, 고무, 유리, 석유, 도로 건설 등 전후방 밸류체인을 견인하는 어마어마한 산업이었습니다.

전기가 보급되자 생산 측면에서는 공장이 전기 동력화가 되면서 자동화된 생산을 이끌어낼 수 있었고, 수요 측면에서는 가정에서 전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라디오, 냉장고, 세탁기 같은 신규 내구소비재가 잔뜩 등장하고 수요를 견인했습니다. (당시 시대를 이끌던 회사의 명칭이 General Electric인 건 의미심장하지 않나요?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전기’라니 하하. 참고로 GE 회장인 ‘오언 영’은 나중에 언급할 ‘영 플랜’을 주도한 인물입니다.)

자동차와 전기의 합작은 현시대의 (아직까지는) AI보다 더 큰 파급력을 지녔습니다. ‘현재까지의’ AI는 LLM의 후방 밸류체인(반도체, 전력기기 등)에 강한 병목을 주고, 전방 산업의 아예 새로운 제품·서비스에 도달했다고 보기는 애매합니다. 자동차 보급으로 사람들은 개인화된 이동이 가능해졌고, 이는 개인이 할 수 있는 역량의 범위를 크게 넓혀주었습니다. 전기 보급으로 개인은 생산성이 높아졌을 뿐만 아니라, 여성들이 집에서 나와 사회생활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고, 이는 사회와 정치 지형의 변화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금융시장의 채찍질, 레버리지와 연쇄 메커니즘

실물시장에서 무언가 큰 변화가 있으면 당연히 금융시장도 가만히 있지 않겠죠. 미국은 1907년 공황을 맞이한 후, (앞선 두 번의 중앙은행 설립과 폐지 이후) 더욱 정교한 (지역 분산과 중앙 집중을 절묘하게 조화시킨) 중앙은행 제도를 구축합니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연방준비제도입니다. (아는 분은 아시겠지만 연준은 하나의 중앙은행이 아닙니다.)

연준 이전 미국은 거의 일상적으로 은행이 파산하였지만, 연준이 도입되고 금융당국은 (여전히 미숙했지만) 적어도 과거보다는 안정적인 금융정책을 펼쳐나갈 수 있었습니다.

실물시장에서 일이 굴러가려면 돈이 있어야 합니다. 금융시장이 돈줄을 조이면 실물시장에서 무언가 해내기가 힘듭니다. 반대로 실물시장에 별게 없는데 금융시장에서 돈을 막 부어버리면 감당할 수 없는 거품이 형성됩니다.

금융시장은 많지도 적지도 않은 적정 수준의 산업 지원을 해야 하는데, 그게 참 어렵습니다. 얼마 정도가 적정하냐의 판단에는 정확한 공식도 없고, 활용할 데이터도 당시에는 많지 않았습니다. 정책의 효과를 미리 예단하기도 어려웠죠.

당시 금융시장에는 레버리지가 매우 많았고, 점점 더 많이 쌓였습니다. 주식 투자자들은 기본적으로 증거금 10%만 내고도 주식을 살 수 있었습니다. 말이 증거금 10%지, 뒤집어 표현하면 10x 레버리지입니다. 기관투자자들은 ‘트러스트(투자신탁)’라는 걸 구성해서 레버리지를 사용했는데, 신탁이 신탁에 투자하면서 레버리지가 곱절로 늘어나기도 했습니다.

금융시장의 중심에는 은행이 있었고, 은행은 과거의 예금·대출 중심의 사업을 넘어서 직접 주식 투자를 하기도 하고 자회사를 통한 증권 인수에도 참여했습니다. 안전히 보호받아야 할 예금자의 자금이 주식시장으로 연결되어 있었던 거죠.

당시에는 레버리지를 뒷받침하는 ‘콜 머니’가 활성화되어 있었습니다. 시장이 활황이니 하루하루 치고 빠지는 투자가 많았고, 그 자금을 빌려주는 하루짜리 단기 자금도 활성화되어 있었습니다. 1920년대 후반에는 이 자금의 연 이자율이 연 10% 가까이 되다 보니(한때 20%까지도), 기업들도 자체 설비 투자, 연구개발 투자보다는 콜 머니에 자금을 대여할 정도였습니다. 대공황을 연구한 학자 갤브레이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투기는 생산적 투자보다 훨씬 매력적이었다는 것이 당시의 시대정신이었습니다.

실물시장이 대호황을 누린 건 맞지만 인간의 상상에는 끝이 없고, 그 기대치가 반영된 금융시장의 레버리지는 누군가 제어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반드시 실물시장보다 앞서가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그 앞서간 기대감은 언젠가 반드시 꺾이게 마련이죠.

레버리지가 잔뜩 끼어 있는 구조라면 상승이 상승을 부추기고 하락이 하락을 가속화하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최근 부각되는 레버리지 ETF의 ‘숏 감마’도 유사한 맥락입니다.) 가격이 올라가면 여유 자금이 늘어나고 ‘더 샀어야 했는데’ 하는 후회로 자산을 더 삽니다. 가격이 하락하면 레버리지 한도가 초과되어 자산을 팔아서 빚을 갚는데, 그런 매도세로 인해 자산 가격이 또 떨어지니까 자산을 또 매각해야 합니다.

한편 그 취약점은 소규모 지역 은행 - 농업 지역으로 쏠려 있었습니다. 중앙은행 역할을 하는 연준이 존재했다 하더라도 그 통제력은 현재보다 미약했고, 미국의 금융은 전국에 흩어진 수만 개 지역 은행이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앞서 언급한 1920~1921년의 짧은 침체에서 회복하지 못한 농업 지역들의 부실은 8년간 꾸준히 누적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맞이한 1930년대의 침체에서 실물 불황이 은행의 연쇄 파산으로 이어지고, 은행의 연쇄 파산은 다시 실물을 침체시켰습니다.

이러한 연쇄 메커니즘은 국가 간에도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1차 세계대전이 언제 종결되었는지 아시나요? 사실 이게 답하기가 좀 애매합니다. 휴전 협상은 1918년에 체결되었고, 종전 협상인 베르사유 조약은 1919년에 체결, 실제 발효는 1920년이었습니다.

문제는, 가장 중요한 이슈 중 하나인 ‘독일에 대한 전쟁배상금 부과’ 문제가 1929년에야 타결되었다는 건데요. 그때까지의 과정이 흥미롭습니다.

프랑스와 영국은 전쟁으로 너무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단적으로 1914년(전쟁 직전)과 1934년(전쟁 후)의 프랑스 인구 구조를 봅시다.

1914년(위, 1차 세계대전 직전)과 1934년(아래, 1차 세계대전 후)의 프랑스 인구 구조

가운데 허리가 뚝 잘려나갔죠. 사회에서 가장 열심히 창의적으로 성실하게 일해야 할 인구가 반 토막이 난 겁니다.

연합군의 주역이었던 프랑스와 영국은 독일에 막대한 전쟁배상금을 물리고 싶었습니다. 미국과의 심각한 의견 차이로 인해 실제 배상금 규모는 1929년에야 최종 타결되지만, 규모가 어찌 되든 간에 웬만해서는 독일은 그걸 갚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미국은 유럽에 채권이 많은데 까딱 잘못했다가는 돈을 떼일 상황이기도 했죠.

여기서 미국이 생각해낸 비책이 바로 ‘도스 플랜(1924년)’과 ‘영 플랜(1929년)’입니다. 대략의 구조는 이렇습니다. 1) 독일의 배상금 부담을 줄인다(총액 감소, 초기 지불액 감소, 지불 기간 연장 등). 2) 미국이 독일에 차관을 지급한다. 3) 배상금 지불과 관련된 감시와 간섭을 최소화한다. (국제결제은행(BIS)가 독일 배상금 지불을 관리하기 위해 설립되었습니다.)

복잡한 얘기 빼고 지금 필요한 이야기만 추리자면 ‘미국이 독일에 차관 지급 → 독일이 산업 생산 → 승전국에 전쟁배상금 지급 → 유럽이 미국에 채무 상환’ 이런 구조입니다.

미국이 지원한 돈이 돌고 돌아서 미국으로 다시 돌아오는 거죠. 그 구조 자체가 문제인 건 아닙니다. 좋은 일에 잘 쓰여서 생산이 늘어나고 개인이 소득을 얻어서 소비를 할 수 있으면 경제가 굴러가게 되는 거니까요.

문제는 미국의 경제가 유럽과 긴밀하게 연결되었다는 겁니다. 미국이 침체에 빠져서 차관 지급에 어려움이 생기면, 미국에 의존하는 독일이 생산을 못 하고 배상금을 못 갚고, 결국 유럽이 미국에 빚을 못 갚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