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의 주식 공부 36] "대공항 돔황챠"
주식 투자자가 알아야 할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지식을 담아 ‘최소한의 주식 공부’를 연재합니다. 주식이라는 자산의 근본적인 실체에서 시작해, 의사결정의 주요 원칙과 피해야 할 함정에 대해 홍진채 라쿤자산운용 대표가 독자 여러분과 함께 고민합니다. ― 버핏클럽
‘대공황’은 모두가 두려워하는 폭락과 고통의 대명사입니다. 주가지수가 90% 폭락하고, GDP가 30% 감소하고, 실업률이 25%까지 치솟고, 1만 개 가까운 은행이 문을 닫았던 바로 그 사건입니다.
주식시장에 참여하는 투자자가 많아지고 변동성이 극심해진 만큼, 주가가 급락할 때마다 대공황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일은 점점 더 많아질 것입니다. 오늘은 대공황이 무엇이었는지, 우리는 실제로 무엇을 두려워해야 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주가 하락은 근본 원인이 아니다
아래는 다우존스지수 장기 차트입니다.

1920년대가 끝날 즈음, 유난히 급하게 하락한 지점이 보입니다. 100년 가까이 과거의 하락 폭이 아직도 이렇게 유의미하게 차지한다는 건 당시의 심각한 분위기를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해줍니다.
여기서 아주 조금만 더 살펴보면, 1929년 10월의 주가 급락을 대부분 대공황의 시초로 이야기합니다. 9월 고점을 찍고 약 두 달 만에 주가가 47% 하락했습니다. 많은 투자자가 파산했습니다. 특히 그 직전, 저명한 경제학자였던 어빙 피셔가 “주가는 장기적으로 지속될 고원 지대에 도달했다(Stock prices have reached what looks like a permanently high plateau)”라고 한 말은 두고두고 조롱과 비난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후 피셔는 대공황을 분석하여 부채-디플레이션 이론을 내놓습니다. 이 모델은 현재에도 유효합니다. 훌륭한 학자입니다.)
이런 이야기들에서 우리는 1929년 10월의 주가 급락이 트리거가 되어, 사람들이 패닉에 빠져 자산을 매각하고 안전자산을 찾고, 실물 경기가 위축되고, 사람들이 실직하고, 돈이 없어서 소비를 못 하고, 기업 실적이 나빠지고, 또 해고하고, 이런 악순환이 일어난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런 연쇄 사고는 매우 자연스럽지만 실제로 일어난 일은 다릅니다.
1929년 급락 직후로 차트를 끊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어떤가요? 직관적으로 생각해봅시다. 모든 걸 던지고 도망가고 싶은 공포감이 느껴지시나요?
1930년 4월까지 주가는 바닥에서 약 50% 반등했습니다. 고점 대비하면 여전히 상당한 충격이 남아 있는 상태지만, 과거 장기간의 추세가 꺾였다고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여전히 미국은 강력하고, 장기간 상승이 있었으니 이 정도 하락은 맞이할 수 있지, 정도가 일반적인 판단일 겁니다. 레버리지를 쓴 공격적인 투자자들이 상당한 타격을 입었겠지만, 앞으로 다가올 파국을 예상하기에는 근거가 충분치 않았습니다
실제로 당시 많은 전문가기 “공황 끝”을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세상은 멸망했습니다.

1930년 중반부터 1932년 여름까지 주가는 끝없이 하락했고, 1929년 고점 대비 -89% 수준에서 바닥을 찍었습니다.
단지 1929년의 하락만으로는 이런 붕괴를 초래할 수 없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1987년 블랙 먼데이 때는 하루 -22% 하락해서 단기 충격으로 보자면 1929년에 버금가는 낙폭을 보였지만, 실물 경기 침체 없이 회복되었습니다.
‘대공황’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단순히 주가 급락만으로는 안 됩니다.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잔뜩 쌓여 있어야 합니다. 쌓인 게 많아야 터질 것도 많습니다. 그게 무엇이었을까요?
실물시장의 대호황, 새로운 시대
다우존스지수는 1921~1929년 기간에 약 6배 상승(수익률 약 500%)했습니다. 무려 8년간의 강세장이었습니다. 이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모두 알다시피 미국은 1차 세계대전의 가장 큰 수혜국이었습니다. 유럽 대륙에서 모두가 참여하는 전쟁이 벌어졌을 때 미국은 말 그대로 ‘강 건너 불구경’ 상태였고, 그걸 넘어서 소방차, 즉 무기와 자원을 수출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1800년대 후반에 미국은 이미 산업 생산 역량에서 전 세계 최강 국가가 되어 있기는 했습니다만, 그 역량은 유럽에 많은 빚을 지고 있었습니다. 유럽의 자본과 기술, 인력을 도입하여 미국의 산업 생산이 이루어졌고, 미국은 순채무국이었습니다. 전쟁을 통해 미국은 빚을 갚고도 남아서 순채권국, 전 세계 가장 많은 금 보유국이 되었습니다. (덕분에 전후 처리에서도 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고, 이는 이후의 새로운 비극으로 이어졌습니다.)
전쟁이 종료되고 인력의 과다 공급과 전염병 등으로 2년간 침체가 있었지만 이후 미국은 다시 성장을 거듭합니다. 1920년대 미국 제조업 생산성이 연 5~6% 성장했습니다. 장기 평균의 2~3배에 가까운 수치였습니다. (1920~1921년의 침체는 별다른 대응 없이 회복되었는데 사실 도시와 산업 쪽에 편중된 회복이었고, 농업은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이게 나중의 대공황의 씨앗이 됩니다.)
당시 성장의 원동력은 다양하지만 크게 두 가지를 꼽자면 자동차와 전기의 보급입니다. 1920년대에 포드 모델 T가 대중화되었습니다. 자동차가 지금이야 성숙산업이지만, 초창기 자동차는 철강, 고무, 유리, 석유, 도로 건설 등 전후방 밸류체인을 견인하는 어마어마한 산업이었습니다.
전기가 보급되자 생산 측면에서는 공장이 전기 동력화가 되면서 자동화된 생산을 이끌어낼 수 있었고, 수요 측면에서는 가정에서 전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라디오, 냉장고, 세탁기 같은 신규 내구소비재가 잔뜩 등장하고 수요를 견인했습니다. (당시 시대를 이끌던 회사의 명칭이 General Electric인 건 의미심장하지 않나요?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전기’라니 하하. 참고로 GE 회장인 ‘오언 영’은 나중에 언급할 ‘영 플랜’을 주도한 인물입니다.)
자동차와 전기의 합작은 현시대의 (아직까지는) AI보다 더 큰 파급력을 지녔습니다. ‘현재까지의’ AI는 LLM의 후방 밸류체인(반도체, 전력기기 등)에 강한 병목을 주고, 전방 산업의 아예 새로운 제품·서비스에 도달했다고 보기는 애매합니다. 자동차 보급으로 사람들은 개인화된 이동이 가능해졌고, 이는 개인이 할 수 있는 역량의 범위를 크게 넓혀주었습니다. 전기 보급으로 개인은 생산성이 높아졌을 뿐만 아니라, 여성들이 집에서 나와 사회생활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고, 이는 사회와 정치 지형의 변화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금융시장의 채찍질, 레버리지와 연쇄 메커니즘
실물시장에서 무언가 큰 변화가 있으면 당연히 금융시장도 가만히 있지 않겠죠. 미국은 1907년 공황을 맞이한 후, (앞선 두 번의 중앙은행 설립과 폐지 이후) 더욱 정교한 (지역 분산과 중앙 집중을 절묘하게 조화시킨) 중앙은행 제도를 구축합니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연방준비제도입니다. (아는 분은 아시겠지만 연준은 하나의 중앙은행이 아닙니다.)
연준 이전 미국은 거의 일상적으로 은행이 파산하였지만, 연준이 도입되고 금융당국은 (여전히 미숙했지만) 적어도 과거보다는 안정적인 금융정책을 펼쳐나갈 수 있었습니다.
실물시장에서 일이 굴러가려면 돈이 있어야 합니다. 금융시장이 돈줄을 조이면 실물시장에서 무언가 해내기가 힘듭니다. 반대로 실물시장에 별게 없는데 금융시장에서 돈을 막 부어버리면 감당할 수 없는 거품이 형성됩니다.
금융시장은 많지도 적지도 않은 적정 수준의 산업 지원을 해야 하는데, 그게 참 어렵습니다. 얼마 정도가 적정하냐의 판단에는 정확한 공식도 없고, 활용할 데이터도 당시에는 많지 않았습니다. 정책의 효과를 미리 예단하기도 어려웠죠.
당시 금융시장에는 레버리지가 매우 많았고, 점점 더 많이 쌓였습니다. 주식 투자자들은 기본적으로 증거금 10%만 내고도 주식을 살 수 있었습니다. 말이 증거금 10%지, 뒤집어 표현하면 10x 레버리지입니다. 기관투자자들은 ‘트러스트(투자신탁)’라는 걸 구성해서 레버리지를 사용했는데, 신탁이 신탁에 투자하면서 레버리지가 곱절로 늘어나기도 했습니다.
금융시장의 중심에는 은행이 있었고, 은행은 과거의 예금·대출 중심의 사업을 넘어서 직접 주식 투자를 하기도 하고 자회사를 통한 증권 인수에도 참여했습니다. 안전히 보호받아야 할 예금자의 자금이 주식시장으로 연결되어 있었던 거죠.
당시에는 레버리지를 뒷받침하는 ‘콜 머니’가 활성화되어 있었습니다. 시장이 활황이니 하루하루 치고 빠지는 투자가 많았고, 그 자금을 빌려주는 하루짜리 단기 자금도 활성화되어 있었습니다. 1920년대 후반에는 이 자금의 연 이자율이 연 10% 가까이 되다 보니(한때 20%까지도), 기업들도 자체 설비 투자, 연구개발 투자보다는 콜 머니에 자금을 대여할 정도였습니다. 대공황을 연구한 학자 갤브레이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투기는 생산적 투자보다 훨씬 매력적이었다는 것이 당시의 시대정신이었습니다.
실물시장이 대호황을 누린 건 맞지만 인간의 상상에는 끝이 없고, 그 기대치가 반영된 금융시장의 레버리지는 누군가 제어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반드시 실물시장보다 앞서가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그 앞서간 기대감은 언젠가 반드시 꺾이게 마련이죠.
레버리지가 잔뜩 끼어 있는 구조라면 상승이 상승을 부추기고 하락이 하락을 가속화하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최근 부각되는 레버리지 ETF의 ‘숏 감마’도 유사한 맥락입니다.) 가격이 올라가면 여유 자금이 늘어나고 ‘더 샀어야 했는데’ 하는 후회로 자산을 더 삽니다. 가격이 하락하면 레버리지 한도가 초과되어 자산을 팔아서 빚을 갚는데, 그런 매도세로 인해 자산 가격이 또 떨어지니까 자산을 또 매각해야 합니다.
한편 그 취약점은 소규모 지역 은행 - 농업 지역으로 쏠려 있었습니다. 중앙은행 역할을 하는 연준이 존재했다 하더라도 그 통제력은 현재보다 미약했고, 미국의 금융은 전국에 흩어진 수만 개 지역 은행이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앞서 언급한 1920~1921년의 짧은 침체에서 회복하지 못한 농업 지역들의 부실은 8년간 꾸준히 누적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맞이한 1930년대의 침체에서 실물 불황이 은행의 연쇄 파산으로 이어지고, 은행의 연쇄 파산은 다시 실물을 침체시켰습니다.
이러한 연쇄 메커니즘은 국가 간에도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1차 세계대전이 언제 종결되었는지 아시나요? 사실 이게 답하기가 좀 애매합니다. 휴전 협상은 1918년에 체결되었고, 종전 협상인 베르사유 조약은 1919년에 체결, 실제 발효는 1920년이었습니다.
문제는, 가장 중요한 이슈 중 하나인 ‘독일에 대한 전쟁배상금 부과’ 문제가 1929년에야 타결되었다는 건데요. 그때까지의 과정이 흥미롭습니다.
프랑스와 영국은 전쟁으로 너무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단적으로 1914년(전쟁 직전)과 1934년(전쟁 후)의 프랑스 인구 구조를 봅시다.

가운데 허리가 뚝 잘려나갔죠. 사회에서 가장 열심히 창의적으로 성실하게 일해야 할 인구가 반 토막이 난 겁니다.
연합군의 주역이었던 프랑스와 영국은 독일에 막대한 전쟁배상금을 물리고 싶었습니다. 미국과의 심각한 의견 차이로 인해 실제 배상금 규모는 1929년에야 최종 타결되지만, 규모가 어찌 되든 간에 웬만해서는 독일은 그걸 갚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미국은 유럽에 채권이 많은데 까딱 잘못했다가는 돈을 떼일 상황이기도 했죠.
여기서 미국이 생각해낸 비책이 바로 ‘도스 플랜(1924년)’과 ‘영 플랜(1929년)’입니다. 대략의 구조는 이렇습니다. 1) 독일의 배상금 부담을 줄인다(총액 감소, 초기 지불액 감소, 지불 기간 연장 등). 2) 미국이 독일에 차관을 지급한다. 3) 배상금 지불과 관련된 감시와 간섭을 최소화한다. (국제결제은행(BIS)가 독일 배상금 지불을 관리하기 위해 설립되었습니다.)
복잡한 얘기 빼고 지금 필요한 이야기만 추리자면 ‘미국이 독일에 차관 지급 → 독일이 산업 생산 → 승전국에 전쟁배상금 지급 → 유럽이 미국에 채무 상환’ 이런 구조입니다.
미국이 지원한 돈이 돌고 돌아서 미국으로 다시 돌아오는 거죠. 그 구조 자체가 문제인 건 아닙니다. 좋은 일에 잘 쓰여서 생산이 늘어나고 개인이 소득을 얻어서 소비를 할 수 있으면 경제가 굴러가게 되는 거니까요.
문제는 미국의 경제가 유럽과 긴밀하게 연결되었다는 겁니다. 미국이 침체에 빠져서 차관 지급에 어려움이 생기면, 미국에 의존하는 독일이 생산을 못 하고 배상금을 못 갚고, 결국 유럽이 미국에 빚을 못 갚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잘못된 정책 대응, 국가 간 분쟁
국가의 대응은 멀쩡한 경제를 무너뜨리기도 하고, 무너진 경제를 살리기도 합니다.
1929년의 미국은 8년간 장기 호황을 거쳤습니다. 이러한 장기 호황과 주가 급등을 바라본 연준은 1928년부터 금리를 올렸습니다. 실물시장은 1929년 10월이 되기 이전, 6~7월에 이미 정점을 찍고 하락했습니다.
금리 인상은 거품을 누르기 위한 선제적 대응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1930~1931년 은행 연쇄 파산 시에도 통화량을 늘리지 않았던 점입니다. M2가 1929~1933년 사이에 약 33% 감소했습니다. 밀턴 프리드먼이 대공황의 핵심 원인으로 꼽은 지점입니다.
금본위제를 유지하는 데 집착한 점도 있습니다. 금본위제하에서는 통화정책을 펼치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건강한 통화(sound money)에 대한 집착이 경기 대응력을 줄이고, 변동성이 취약한 경제는 결국 통화에 대한 신뢰를 흔들지만, 당시에는 신용화폐에 대한 신용이 부족했기 때문에, 금태환을 포기한다는 건 너무나 큰 리스크를 짊어지는 행위였습니다. (금태환을 빠르게 포기한 영국은 대공황에서 빨리 탈출했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1930년 스무트-홀리 관세법이 제정되고 관세율이 인상되었습니다. (평균 관세율 40% → 47%, 1932년 59%까지.) 이후 25개국이 보복 관세를 던졌고, 1929~1932년 사이 세계 교역량은 66% 붕괴되었습니다. 법안 통과 전 1,000명이 넘는 경제학자들이 후버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청원했으나 강행되었습니다.
후버 대통령은 정밀한 엔지니어링으로 경제를 통제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시장주의자인 척했지만 실제로는 통제 정책을 상당히 펼쳤는데요. 대표적으로 임금 유지가 있습니다. 불황이 깊어지니까 후버 대통령은 기업들에 근로자의 임금을 삭감하지 말 것을 강요했습니다. 그럼 기업의 선택은 어떻게 될까요? 고용을 안 하게 되죠. 기존 근로자들의 고용을 유지하는 대가로 신규 고용이 줄어들고 이는 파멸적인 결과를 불러왔습니다. (기존 내부자를 보호하느라 신규 진입을 틀어막은 현상이 극대화된 것이 1990년대 이후 일본의 불황입니다.)
그렇게 해서 1929년부터 1937년까지 무려 8년에 걸친 불황이 있었습니다. 어, 그런데 8년이라면 생각보다 짧은 느낌이 들지요?
네, 대공황에는 후반전이 또 남아 있었습니다. 1937년 실질 GDP는 1929년 수준을 거의 회복했습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불황이 종료되었다고 판단하고 균형 예산으로 회귀했습니다. 재정 지출을 줄이고, 연준은 지급준비율을 인상했습니다. 그리고 GDP는 다시 10% 감소했습니다.
일반적으로 대공황은 케인스의 재정정책을 이어받아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으로 극복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는 절반(혹은 그 이하)의 진실입니다. (케인스는 루스벨트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지 않았고) 뉴딜 정책은 대공황을 완전히 극복하는 데에는 실패했고, 제대로 대공황을 극복하고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는 데에는 새로운 전쟁, 2차 세계대전이 크게 기여했습니다.
대공황은 25년 불황이었나?
투자자들이 기준으로 삼는 주가지수(여기서는 다우존스지수)는 1954년에 1929년 고점을 회복했습니다. 그래서 대공황을 25년 불황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짚어볼 점이 있습니다.
1929~1933년 기간에는 물가가 25~30% 하락했습니다. 명목 GDP가 1929년 수준을 회복한 것은 1941년이지만, 디플레이션을 조정한 실질 GDP는 1937년에 회복했습니다. 루스벨트의 판단이 아주 잘못된 건 아니었던 거죠. 개인들이 느끼는 실물 경제는 1937년에는 ‘그럭저럭 괜찮네’라고 여길 수준으로 회복했던 겁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그래도 고점에 투자했으면 25년 동안 손실을 감내해야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도 보정이 좀 들어가야 하는데요. 앞서 말씀드린 디플레이션을 보정해야 하고요. 거기에 배당도 있습니다. 1930년대 배당수익률은 5~8%대였습니다. 디플레이션을 감안하면 그 배당의 실질가치는 더 큽니다. (1930년대에 잉태된 그레이엄의 ‘가치투자’가 망하지 않는 자산, 배당수익률, 인플레이션 등의 개념을 주축으로 삼고 있는 것과 일맥상통합니다.)
이 점들을 감안한 실질 총수익 기준 손익분기는, 쓰는 지수와 가정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1930년대 중반에 한 번 도달했다가 1937년 침체로 다시 밀렸고, 1940년대 중반에는 견고하게 회복됩니다. (전쟁 덕분이긴 하지만요.)
이게 20세기 최악의 불황의 실체입니다. 물론 그 고통이 허구였던 건 전혀 아닙니다.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이 고통받았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우리가 의사결정을 할 때 “고점에서 까딱 잘못 물렸다가는 수십 년간 회복하지 못한다. 1929년 대공황을 보아라”라는 주장은 상당히 과장되어 있습니다.
그럼 무엇을 볼 것인가?
정리해보겠습니다. 1930년대 대공황을 잠깐 살펴본 바, 다음과 같은 시사점이 있었습니다.
1) 대공황은 그 이전의 장기 호황과 급등 끝에 찾아왔다. 2) 장기 호황이 있으려면 실물 세상에 큰 변화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호황에는 거의 반드시 금융 레버리지가 따른다. 레버리지는 연쇄 상승과 붕괴 작용을 일으킨다. 3) 주가가 급락하거나 일시적인 경기침체만으로 대공황이 펼쳐지지는 않는다. 깊게 쌓인 연쇄 구조, 매우 잘못된 정책 대응들이 대공황을 일으킨다. 매우 잘못된 정책 대응 중 일부는 해당 시점에서 관측 가능하다.
그럼 지금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1. 타이밍 예측은 위험하다
늘 하는 이야기죠. 대공황 이전에는 대호황이 있습니다. 대공황을 두려워하며 공황의 타이밍을 맞히려다 보면, 너무 일찍 시장에서 이탈하는 일이 자주 생깁니다. 그러다 보면 이후의 호황과 주가 상승에서 조급함을 느끼고 다시 시장에 뛰어듭니다. 그러면 그 이후에는 점점 더 나쁜 선택을 하게 될 수 있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최근에 주가가 많이 올랐다’만으로는 대공황을 점칠 수 없습니다.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닙니다.
2. 구조가 중요하다
투자자들이 얼마나 레버리지를 쓰고 있는지, 아직 시장에 참여하지 않은 잠재적인 투자자들은 누구인지, 참여자들은 얼마나 과한 기대를 하고 있는지 등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들에게 유동성을 공급하는 금융기관과, 금융기관을 규제하는 정책 당국자의 태도가 중요합니다.
모두가 미래를 낙관적으로 그리고, 대출을 내주고, 투자자들은 흔쾌히 그 대출을 활용하여 투자에 나서면, 위험합니다. 성공은 그 자체로 실패의 씨앗을 잉태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금융 레버리지 구조가 산업 간, 국가 간 어떤 식으로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는 것도 중요하겠죠.
3. 정책 대응, 역량과 의지를 확인하라
거품은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도 있고 사후적으로 대응할 수도 있습니다. 둘 다 장단점이 있습니다.
선제 대응은 거품의 크기를 줄이는 역할을 하지만, 나 혼자 선제 대응할 경우 경쟁에 뒤처질 위험이 있습니다. 개인 간이라면 개인의 실패로 끝납니다. 그러나 국가 간이라면 다른 나라가 레버리지를 활용해 생산력과 기술력을 늘리는 와중에 나만 뒤로 물러선다면, 경제가 뒤처질 뿐만 아니라 안보의 위협에 직면할 수도 있습니다.
사후 대응은 이미 사건이 벌어진 이후이기 때문에 무척 어렵습니다. 그래도 무언가 해야 합니다. 국제 공조가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뭘 한들 비난을 받겠지만, 그래도 뭐라도 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다행이겠죠.
그래서 중요한 건 ‘쓸 수 있는 카드가 존재하느냐’입니다. 한 개인이 거시경제를 대단히 깊이 공부하지 않는 이상, 어떤 정책 대응이 올바르냐 아니냐를 판단하기는 무척 어렵습니다.
그러나 ‘어떤 카드가 남아 있느냐’를 판단하는 건 상대적으로 쉽습니다. 금리 상태, 재정 여력, 통화 독립성, 수출 가능한 재화 등 위기가 벌어졌을 때 쓸 수 있는 카드가 무엇인지는 우리도 쉽게 알 수 있고, 그 정보는 정책 당국자들도 중요하게 고려하는 정보들이겠죠.
협상에서 누가 이길지 사전에 예측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누가 유리한지 판단하기는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고, 보통은 유리한 쪽, 여유 있는 쪽에게 긍정적인 결과가 나옵니다. (유리한데도 진다면 그걸 무능하다고 불러야겠죠.)
4. 안전자산이란 무엇인가
대공황에서 나를 지켜줄 안전한 자산이라는 건 실제로 큰 의미가 없습니다. 경제가 망해버리면 금덩어리를 들고 있은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채권은 인플레이션에 녹아 내립니다. 디플레이션에서 지켜줄 수야 있겠지만, 채무자가 상환을 못 해버리면 끝이죠. 현금도 마찬가지고요. 저PBR 자산주? 유동성이 적어서 주가는 더 많이 빠집니다.
미국 국채는 여러 시나리오에서 꽤 좋은 선택이 되겠습니다만, 공황이 닥치면 이미 급등한 이후이고, 공황이 닥치기 전이라면 다른 급등하는 자산들 때문에 손이 안 갈 겁니다. 미국 국채는 자산 배분에는 큰 도움을 주지만, 공황을 예측하고 치고 빠지는 용도로는 글쎄요. 마켓 타이밍의 고수에게는 좋은 도구가 되겠지만 저는 그런 고수가 아니라 잘 모르겠습니다.
공황이 두려울 때 제가 편안하게 느끼는 자산은 다음과 같습니다. 불황에 버틸 경쟁력을 가진 회사, 인플레이션에 대응할 수 있는 회사, 현금 창출 능력이 좋은 회사 등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회사의 주식이란 말이죠. (그렇다고 금이나 채권이 무의미하다는 건 아닙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자산 배분 용도로 좋은 자산입니다.)
이런 전제를 만족하는 선에서 과하게 비싸지 않은 주식을 들고 있으면 딱히 두려울 게 없습니다. 주가 하락에서 물론 나도 타격을 받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나의 생계를 유지할 수는 있습니다. 죽지 않는다면 언젠가 좋은 일도 오겠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