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크셔 통신 7] 버핏의 진짜 무기 ‘언더라이팅’

버크셔 해서웨이 그룹에서 근무하는 한국인인 필자가 바라본 워런 버핏은, 위대한 투자자이기 이전에 탁월한 경영자다. 그의 철저한 경영 방식은 투자 원칙과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체계로 이어진다. 버핏의 가치평가 원칙이 현장 경영과 기업 문화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살펴보며, 그가 왜 단순한 투자자가 아니라 성공적인 경영자인지 한국 독자에게 전하고자 한다. ― 버핏클럽

Getting your Trinity Audio player ready...

워런 버핏을 상징하는 단 하나의 단어를 꼽는다면 단연 가치투자다. 정의는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가치투자란 대체로 내재가치보다 낮은 가격에 자산을 인수해 가격이 가치를 능가할 때까지 보유하는 전략이다. 많은 사람은 버핏을 가치투자의 원칙을 적용해 성공한 ‘주식 투자자’로 생각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단편적인 판단일 수 있다.

버핏이 이끄는 버크셔 해서웨이는 펀드가 아니라 지주회사다. 이는 단순한 법인 형태 차이가 아니라 버핏을 이해하는 아주 중요한 단서다. 펀드에서는 투자 자체가 경영의 목적이고 투자 수익이 존재 의의다. 하지만 지주회사에서 주식 투자는 자산 배분 과정이자 경영 전략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가 공장을 짓고 그 공장에서 이익을 낸다고 해서 이들을 건설 회사로 정의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버핏은 버크셔를 통해 가치투자를 어떻게 실현해왔을까? 뉴스에 나오는 버핏의 투자 종목을 살펴보는 것은 표면적인 분석이다. 버크셔의 경영 활동 중 일부가 공개시장에 노출됐을 따름이다. 따라서 버핏이 버크셔를 경영하는 매일의 과정 전체에서 가치투자 철학이 어떻게 구현되는지 이해하는 편이 훨씬 근본적인 분석일 것이다. 한마디로 버핏의 가치투자 철학은 ‘언더라이팅(underwriting)’이라는 프레임을 통과해 경영 전반에 투사된다.

가치투자와 언더라이팅은 원석을 묵묵히 채굴하는 과정을 닮았다.

위험을 인수하는 자, 언더라이터

언더라이팅이란 증권과 보험업계에서 쓰이는 용어로, 리스크를 평가해 인수하는 과정이다. 누구든 거의 매일 무언가를 분석하고 판단하거나, 위험을 알아챈 뒤 피하려 행동한다. 개인과 기업, 국가를 가리지 않고 우리 주변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다.

다만 언더라이팅이 다른 판단 행위나 위험 감지와 다른 점은, 꼼꼼히 가치를 분석한 후에 위험을 제거하는 게 아니라 ‘인수’한다는 데 있다. 즉 단순히 리스크를 관리하는 수동적인 개념이 아니다. 리스크에는 그만큼의 가치가 동반돼 있다는 전제하에 아래 내재가치가 얼마나 되는지 평가한 후 확신이 선다면 과감히 리스크를 인수하는 능동적인 과정이다.

증권사도 언더라이팅을 한다. 계약 대상이 되는 주식이나 채권의 리스크를 평가한 뒤 안 팔리거나 부도가 날 리스크를 모두 인수한다. 이후 해당 증권을 인수 가격보다 비싸게 시장에 매각해 차익(스프레드)을 얻는다. 보험사의 언더라이팅은 계약 대상이 되는 보험의 리스크를 평가한 뒤 재난이나 사고 등이 발생할 리스크를 전부 인수하기로 약속하는 행위다. 그 리스크 보증의 대가로 받는 보험료(premium)가 향후 발생할 손해보다 높다면 이익을 본다.

보험사나 증권사가 이익을 만드는 원리를 보면 짐작할 수 있듯이, 언더라이팅은 근본적으로 가치투자의 원리와 궤를 같이한다. 가치투자가 가치와 가격의 괴리를 활용해 수익을 낸다면, 언더라이팅 또한 가치평가를 통해 리스크와 가격의 괴리를 파악해 수익을 낸다. 결국 심사 대상이 가치냐 리스크냐가 다를 뿐 원칙은 비슷하다.

또한 가치투자에서 투자 기업을 철저히 이해해야 내재가치를 알 수 있는 것처럼, 언더라이팅에서도 계약 대상 자산의 리스크를 완벽하게 파악해야 한다. 언더라이팅과 가치투자 모두 리스크를 정확히 평가해야 남들이 꺼리는 내재된 위험에 과감히 베팅할 수 있다. 목적이 수익 창출이냐 손실 방어냐의 차이는 있지만, 제대로 파악되지 않은 매물에 베팅했다가는 한 번의 위기로 기관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은 마찬가지다.

언더라이팅은 남들이 감당하기 어려워하는 위험을 과감히 인수하고 결국 가치를 발굴해낸다는 점에서 광부를 닮았다. 평범한 투자자들이 광산에서 금덩이를 찾으려 할 때, 언더라이터들은 원석을 묵묵히 채굴한다. 채굴 비용과 감수한 리스크보다 원석에서 발굴한 보석의 가치가 크다면 꽤 성공한 비즈니스가 되는 셈이다. 게다가 버크셔의 보험 계열사는 증권사처럼 곧바로 매각을 통해 차익을 실현할 필요가 없다. 보험 특성상 이익(보험료)은 먼저 거두고, 리스크(보험금 지급)는 나중에 감당한다.

버핏은 1960년대 버크셔를 인수한 이후, 이런 언더라이팅 원칙에 기반해 보험사를 인수해나가며 플로트를 축적했다. 그리고 자신의 언더라이팅 원칙을 보험 계열사 전체에 반영했다. 이후 반세기 넘게 버크셔의 다른 비보험 계열사 인수나 주식 투자는 보험 계열사들이 모은 보험 준비금 혹은 플로트로 주로 이뤄져왔다. 보험금처럼 예측 가능한 장기 자산은 단기적 변동성이 큰 주식시장이나 기업 인수에 가장 어울리는 자본으로, 사모펀드 등 다른 경쟁자를 제치는 경쟁력이 됐다. 물론 버크셔는 기업 규모가 아주 커진 다음에는 제조, 유통, 에너지 등 다양한 자회사에서 걷은 현금으로도 투자와 인수를 활발히 진행했다.

버핏이 유일하게 손을 놓지 않는 영역

버핏은 버크셔의 핵심인 언더라이팅 방식을 자회사에 이르기까지 시스템화해 일관되게 리스크를 평가했다. 또한 전 계열사에 나눠주는 자본 배분도 중앙에서 직접 관리했다. 보험이 아닌 다른 자산의 언더라이팅, 이를테면 주식 투자나 기업 인수, 채권 투자의 인수 심사는 직접 챙겼다.

버핏이 자회사를 인수한 후에는 ‘간섭하지’ 않는다는 경영 원칙이 주로 비보험 회사에 한정된다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즉 버핏은 언더라이팅이 개입되는 영역에는 자신의 가치투자 원칙을 심어 놓았거나 아예 직접 관리한다. 하지만 언더라이팅이 들어가지 않는 일상적인 경영은 전문가에게 위임한다.

예를 들어 초기에는 자신이 잘 아는 언더라이팅을 시스템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보험사들을 우선적으로 인수했다. 이후 가치투자를 원칙으로 삼아 다양한 기업을 인수하면서, 언더라이팅이 들어가지 않는 자회사 경영은 각 분야 전문가들의 자율성에 맡겨왔다. 반면 보험 사업처럼 이익의 재배치 등 자본 배분은 본사의 철저한 언더라이팅, 즉 위험 평가와 인수 심사가 필요하다 보니, 모든 잉여 이익을 지주회사로 모아 직접 최적의 배분처를 심사해왔다. 그러면서 오늘날 버크셔만의 자본 배분 중심 경영 모델이 완성됐다.

요약하면, 버핏은 투자의 달인이라기보다 언더라이팅, 즉 리스크 심사와 인수의 달인이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한 묘사다. 버크셔의 비즈니스 모델은 그의 언더라이팅 철학을 시스템적으로 구현한 것이다. 버핏의 자본 배분 중심 경영 또한 처음부터 치밀하게 의도된 전략이라기보다, 언더라이팅의 필요에 따라 자연스럽게 정착된 결과에 가깝다.

※ ‘버크셔 통신’은 필자의 개인 사정으로 당분간 연재를 쉽니다. 그동안 성원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더 좋은 모습으로 다시 찾아뵐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 버핏클럽의 모든 글은 특정 종목에 대한 매수·매도 추천이 아닙니다. 투자 판단에 대한 모든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귀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