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단상] 가치좌파와 가치우파, 당신의 선택은?

시장에 난무하는 소음 속에서 중심을 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럴수록 기본에 집중하고 올바른 원칙을 지켜야 하지만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은 녹록지 않습니다. ‘투자 단상’은 현직 펀드매니저가 시의적절한 고민을 함께 나누는 코너입니다. 투자 대가들이 역경을 이겨낸 방법을 소개하고 실패 사례에서 배우는 기회도 마련하겠습니다. ― 버핏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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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가 V 자를 그린다고 할 때, V 자의 왼쪽에서 주식을 사는 투자자를 소위 ‘가치좌파’라고 합니다. 반대로 V 자의 오른쪽에서 사는 투자자를 ‘가치우파’라고 하죠. 정치적인 부분과는 무관합니다. 단지 투자의 성향 차이입니다.

시장이 어떤 기업의 미래를 좋지 않게 바라볼 때 보통 주가가 빠집니다. 이슈가 해소되기 전까지 하향 추세를 그리게 됩니다. 물론 기업과 상관없는 여러 가지 매크로 이슈에도 주가는 충분히 빠질 수 있습니다.

주가가 빠지면 가치좌파는 싸지는 주가에 먼저 반응합니다. ‘이 주식이 이 가격이라니 말이 되나?’라는 물음과 함께 고민 끝에 주식을 모아갑니다. 반면에 가치우파는 ‘시간의 기회비용’을 따집니다. 지금 사기 시작하면 너무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할 수도 있고, 실제로 내가 모르는 악재가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일단 관망합니다.

그러다가 악재가 해소되거나 오해가 사라지면 주가가 급등하고 가치좌파는 일정 부분 수익을 실현합니다. 그 시점에 가치우파는 소위 더 먹을 게 있다고 판단하면 높아진 주가에 올라탑니다.

투자에 정답은 없습니다. 둘 다 가치 대비 싸게 사는 행위라면 투자가 될 수 있죠. 다만 각각이 지게 되는 리스크와 기회 요인을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주가가 빠지는 것은 보통 시장에서 그 기업의 미래를 안 좋게 바라볼 때입니다. 지금 당장 이익이 잘 나오더라도 미래가 불투명하거나 악재가 있을 경우입니다. 주가가 절대적으로 싸지지만 이슈가 해소되지 않는다면 추세는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시기에 주식을 사 모은다는 것은, 시장의 안 좋은 뷰가 오해라는 데 베팅하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만일 시장의 판단이 맞아서 주가가 반등하지 못하는 상황이 된다면 가치좌파가 지는 리스크는 무엇일까요? 일단 ‘시간의 기회비용’, 즉 오해가 해소될 것이라고 믿고 기다린 시간의 비용입니다. 또한 기업의 펀더멘털이 예상보다 더 안 좋을 리스크도 지게 됩니다. 시장이 보는 것보다 실제가 더 안 좋은 경우가 펼쳐질 수도 있죠. 주가가 충분히 낮아졌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 더 급락합니다. 바닥인 줄 알았는데 지하실을 경험하는 경우입니다.

가치좌파의 통찰이 맞다면 수익률은 극대화됩니다. 다른 투자자들이 겁에 질려 팔아치울 때 헐값에 사 모았기 때문이죠. 결국 오해가 해소되면서 주가가 급등하고, 고생한 대가를 톡톡히 누리게 됩니다.

반면에 가치우파 투자자는 어느 정도 주가가 올랐을 때 들어가기 때문에 그만큼의 가격 리스크를 지고 시작하게 됩니다. 시간의 기회비용은 줄었지만 그에 따른 비용을 높아진 주가로 치르는 것이죠. 또한 주가가 오르는 초입이 아니라면 하락 리스크를 온전히 부담할 수도 있습니다. 가치와 가격에 대한 판단이 가치좌파보다 더 정확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반면에 가치와 주가 수준에 대한 판단이 정확하다면, 최소한의 기간에 수익률을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악재가 해소된 후 진입하기 때문에, 가치좌파가 지는 ‘더 안 좋은 상황’이 펼쳐질 리스크도 피하게 됩니다.

정리하면 가치좌파는 아무도 모를 때 먼저 아는 경우이고, 가치우파는 사람들이 알아차리기 시작할 때 상대적으로 일찍 줄을 서는 경우입니다. 사실 투자에서 가치좌파와 가치우파를 가르는 것은 주가가 내려갈 때 사느냐, 올라갈 때 사느냐의 차이일 뿐, 본질적인 부분이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통찰’이고, 나의 통찰이 맞아떨어져야 수익을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기업이 가치를 창출해야 하고, 투자자는 그것을 알아볼 통찰을 가져야 합니다. 다만 각각의 경우에 지는 리스크와 기회 요인을 명확히 알아야 차트에 관계없이 자유로운 투자가 가능합니다.

천하의 워런 버핏도 1990년대 웰스파고에 투자할 때는 가치좌파였지만, 1980년대 후반 코카콜라와 2000년대 이후 애플에 투자할 때는 가치우파였습니다. 나름의 스트레스 테스트 기반하에 당시 안 좋아지던 웰스파고에 투자했으나 생각보다 더 안 좋아지는 상황을 맞이합니다. 때문에 주가는 버핏이 진입한 시점의 반토막이 되기도 했습니다. 가치좌파가 겪는 ‘생각보다 더 안 좋은 상황 리스크’를 맞닥뜨린 것이지요. 당시 버핏은 너무 일찍 들어갔다고 소회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버핏의 통찰이 맞았고 이후 주가가 급등합니다.

반면에 코카콜라는 PER 18배 수준에, 그것도 주가가 꾸준히 오르는 상황에서 투자한 터라 투자자들은 의아해했습니다. 모두가 다 아는 주식을 비싼 가격에 들어간 것이 아닌가 싶었던 거죠. 그러나 버핏은 더 큰 가치를 보고 들어갔고 이후 10배의 상승을 경험하게 됩니다. 애플도 비슷한 상황이었습니다.

이처럼 투자의 본질에 집중해야 차트에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투자자가 각자 자신의 포지션이 야기하는 리스크와 기회 요인을 정확히 알고 좋은 투자를 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버핏클럽의 모든 글은 특정 종목에 대한 매수·매도 추천이 아닙니다. 투자 판단에 대한 모든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귀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