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의 주식 공부 29] AI는 거품인가?

주식 투자자가 알아야 할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지식을 담아 ‘최소한의 주식 공부’를 연재합니다. 주식이라는 자산의 근본적인 실체에서 시작해, 의사결정의 주요 원칙과 피해야 할 함정에 대해 홍진채 라쿤자산운용 대표가 독자 여러분과 함께 고민합니다. ― 버핏클럽

Getting your Trinity Audio player ready...

아름다운 꽃에는 벌이 많이 몰려들기 마련입니다. AI는 현재 이미 세상을 바꾸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변화를 피부로 체감하는 분야는 광고, 작곡, 프로그래밍 등 한정적입니다. 변화에 직면한 분야에서는 생존의 위기를 느끼고 있지만, 그 외의 사람들에게 AI는 그저 주가의 큰 변동, 빅테크가 투자 금액을 더더더 늘린다는 자극적인 기사들 정도로 피상적으로 와닿습니다. 그렇기에 현재 AI 관련 기업들의 주가가 거품인가 아닌가 하는 논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오늘은 핫한 AI 버블 논쟁에 짧은 생각 하나를 얹어볼까 합니다.

작년까지는 대답하기 쉬웠다: 거품 아니다

지나간 일을 가지고 왈가왈부하기는 부끄럽습니다만 현재의 판단은 언제나 불확실하기에, 과거에 했던 판단의 근거를 가져와서 현재도 유효한지를 살펴보는 건 의미 없지는 않은 일일 것 같습니다.

2022년 말에 챗GPT가 세상에 충격을 주었고 그 이후 우리는 거의 매달 새로운 서비스들을 접했습니다. 그 이전 자율주행차 정도가 인공지능이 우리 삶에 스며 들어오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면, 이제는 챗GPT와 대화 한 번쯤 안 해본 사람을 주변에서 찾기 어려울 정도로 AI 서비스가 꽤 보편화되어 있습니다. 덕분에 AI 관련 기업의 주가는 2023년에도, 2024년에도 많이 올랐습니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아시겠지만, 그 당시에도 언제나 AI 버블 논쟁은 있었습니다.

당시 AI 버블 논쟁에서 제 주장은 이랬습니다.

거품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1998년 닷컴버블 때와 비교하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명확하게 다른 세 가지가 있다. 1) 투자 재원이 외부 자금이 아닌 자체 자금이다.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아마존, 메타 등은 자체 현금흐름을 활용해 투자하고 있고, 닷컴버블 때는 외부에서 조달한 자금으로 인터넷에 투자했었다. 2) 이미 실제로 돈을 벌고 있다. 챗GPT를 필두로 한 생성형 AI 서비스들, 테슬라의 오토파일럿과 FSD는 이미 정식 출시되어 과금되고 있다. 닷컴버블 당시는 회사가 무슨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지 몰랐고 제품도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주가만 올랐다. 소비자의 태도 또한 명백히 다른데, 지금은 무형의 서비스를 유료로 정기구독하는 형태의 소비에 소비자들이 익숙해져 있다. 3) 금리 인상기다. 닷컴버블 시기는 금리 인하기였다. 폴 볼커 시절의 높은 금리가 십수 년에 걸쳐서 조금씩 낮아지면서 자산들의 가격이 조금씩 상승했고 유동성이 풀려 있었다. 1990년대 중반 금리 인상이 있었으나 아시아 외환위기, 러시아 모라토리엄, LTCM 사태 등이 연이어 터지면서 금리를 낮추었고, 다시 올리려 하다가 ‘밀레니엄 버그’에 대한 우려로 쉽게 금리를 올리지 못하던 시기였다. 반면에 2022년은 금리를 급격히 상승시킨 시기였고, 유동성이 메말라가는 과정에서 빅테크들이 금리 영향을 덜 받는 자체 자금 형태로 투자하고 있었다.

회사가 스스로 번 돈으로, 스스로 필요에 의해 투자를 했고, 그 투자가 이미 새로운 현금흐름을 창출하고 있는데, 단지 가격이 올랐다는 이유만으로 버블을 논하는 건 버블에 대해서 몰라도 너무 모르는 주장이라고 생각했고, 다행히 그 당시에는 그 생각이 맞았던 것 같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근거들은 지금 어떠한가요?

지금은 어떠한가?: 유의미하게 달라졌다

1) 자체 자금인가?: 조금씩 외부 자금을 쓰고 있다

현재 하이퍼스케일러들의 CAPEX는 영업현금흐름의 약 60% 수준입니다. 절반이 안 되던 2~3년 전에 비하면 확실히 올라가 있습니다. (AI 붐 이전에는 30~40% 수준이었습니다.) 절대 규모야 당연히 커졌는데 자체 현금흐름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높아져서, 언젠가는 “자체 자금으로 투자하니까 괜찮아”라는 말은 할 수 없게 됩니다.

굳이 먼 미래로 갈 필요도 없이 이미 하이퍼스케일러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고 외부 자금 조달을 늘리고 있습니다. 빅테크의 AI 설비투자는 여전히 대부분 영업현금으로(약 80% 이상) 충당되고 있으나, 채권과 기타 구조화 딜이 조금씩 커져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AI 데이터센터 목적으로 회사채 발행이 급증하기도 했습니다.

오픈AI 같은 순수 AI 기업들은 당연히 외부 자금 조달에 크게 의존합니다. 여기에 더해 최근에는 엔비디아–오픈AI–오라클 같은 플레이어들 사이에 서로의 CAPEX와 매출이 맞물리는 ‘순환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이런 구조가 곧 붕괴의 트리거가 된다고 보긴 어렵지만, 일단 충격이 한번 터졌을 때 하락 폭과 2차 피해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2) 실제로 돈을 벌고 있는가?: 여전히 부족하다

많은 사람이 생성형 AI 서비스를 구독하고 있고, 이제는 각종 AI 서비스들을 모아주는 플랫폼 서비스도 생겼습니다. AI로 인한 해고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기업 입장에서 AI는 매출을 늘려주기도 하지만 비용을 줄여주기도 합니다. 특히나 AI로 인한 매출액 증분을 체감하기 어려운 메타 같은 경우에도 비용이 극적으로 줄어드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AI를 기업의 ‘위고비’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연간 수천억 달러에 달하는 투자비용을 충당할 정도의 이익을 내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그렇지 않다’고 대답해야겠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2025년 실적 발표에서 애저(Azure) 매출이 전년 대비 30%대 초반 성장했고, 그 성장의 3분의 1가량이 AI 수요 덕분이라고 설명합니다. 애저 연매출은 750억 달러를 넘겼고, 같은 기간 분기 CAPEX는 200억 달러를 훌쩍 넘는 수준까지 증가했습니다. 대략적인 계산만 해봐도 AI 관련 서비스가 분기 수십억 달러 규모의 추가 매출과 수억~수십억 달러 수준의 이익을 더해주고 있는 셈입니다. 하지만 연 천억 달러에 가까운 CAPEX와 비교하면 아직은 턱없이 부족한 숫자입니다.

천억 달러 가까이를 쓰는데 이익이 수십억 달러 증가하면 턱없이 부족합니다. 당연히 미래를 위한 투자이기 때문에 현재 벌고 있는 돈과 비교하는 건 어불성설입니다. 또한 기업의 투자에는 경쟁사 진입 억제, 장기 옵션 가치 등 다양한 요소가 고려됩니다. 과잉 투자보다 과소 투자가 더 위험하다는 발언이 바로 그런 의미입니다.

분명 AI는 놀라운 변화를 가져올 것이고, 기업들은 그 놀라운 변화에서 주요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서 생존을 건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과격한 투자임에도 이미 수익화가 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해야 하는 게 맞습니다. 그러나 그건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라는 뜻일 뿐, ‘거품이 아니다’라는 근거로 삼기에는 부족합니다. 거품이 아닐 가능성이 닷컴버블 때보다 높을 뿐이지요.

3) 금리 인상기인가?: 인하기이다

금리 인상기에는 많은 사람이 고통받지만 투자하기에는 의외로 편합니다. 고금리에서 돈을 버는 기업들은 그만큼 이익 체력이 강하고 외부 자금에 휘둘리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거시 환경에 큰 충격이 있더라도 통화정책을 쓸 수 있는 여력이 있기 때문에 크게 두렵지 않습니다. 유동성이 부족하니까 신규 진입자도 적어서 경쟁도 덜 치열합니다.

연준은 작년부터 금리를 인하했습니다. 모두가 바라던 금리 인하였지만 사실 금리 인하가 그렇게 행복한 건 아닙니다. 유동성이 늘어나고 주가가 오르고 투자자들은 ‘더더더’를 바랍니다. 어설픈 투자자, 속칭 ‘약한 손’이 늘어나도 주가의 변동성은 커지고 기대치는 높아져서, 회사가 조금만 기대치를 미스하거나 어설픈 루머, 별거 아닌 악재가 나오면 주가가 급락하고는 합니다. 그런 걸 다 무시한다 쳐도, 거시 환경에 문제가 생겼을 때 당국의 대응 카드가 줄어든다는 건 꽤 큰 고민거리입니다. 무엇보다 금리 인하 종료는 투자자에게 단기 악재로 작용하겠지요.

위 세 가지를 종합해보았을 때, 2년 전과는 분명 달라졌습니다. 자체 자금으로 투자하고 있으니 괜찮다고 코웃음 치기도 어렵고, 수익화가 되고는 있으나 투자금이 더 빠른 속도로 막대하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고금리라는 든든한 버팀목은 저금리로 변모했습니다. 시장에는 경험이 부족한 사람이 늘어났고, 사소한 뉴스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이 늘어났습니다. 일부 기업은 순환 참조로 자금 조달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 모든 정황이 ‘버블’을 의미할까요? 사실 우리는 거품이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정의는커녕, 제대로 합의조차 하지 않은 채 떠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합의되지 않은 개념에 대해서 논하는 건 생산적이지 못합니다.

거품이 도대체 뭔데

사실 “지금 가격이 거품인가, 아닌가?”라는 질문은 그다지 의미가 없습니다. 주가가 올라서 주목받을 때마다 거품론은 끊임없이 나옵니다. 거품이냐 아니냐는 질문은 대부분의 경우 단기 변동성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이 내뱉는 두려움의 한 형태일 뿐입니다.

거품이 무엇인지 엄밀히 정의하는 것보다 간편한 방법이 있습니다. 과거를 살펴보는 일입니다. “지금 거품 아닌가?”라는 질문은 늘상 나오지만, 과거를 돌이켜봤을 때 “그래, 그건 거품이었지”라고 명확하게 언급되는 사례는 놀라울 정도로 적습니다. 우리가 흔히 기억하는 거품은 무엇이 있을까요? 앞서 언급한 1990년대 말 닷컴버블, 2008년 금융위기(2000년대 중반 부동산 버블) 정도가 지난 100년 사이에 손꼽히게 언급되는 버블 사례입니다. 1929년 대공황도 포함한다면 3개 정도가 되겠네요. 소소하게는 저축은행 파산 사태나 한국 한정 카드채 사태 등도 들 수 있겠습니다. 암튼 요지는, 인간은 늘 거품을 우려하지만 실제 거품의 개수는 생각보다 훨씬 적다는 겁니다.

그럼 그 거품 사례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우선 다른 걸 떠나서 가격이 급락해야겠지요. 가격 급락이 있지 않고서 ‘거품이 터졌다’라고 묘사하는 건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냥 급락이라고 하면 좀 없어 보이니까, 대략 고점 대비 30% 이상의 지수 하락이라고 정의해봅시다. (20% 정도의 하락은 빈번하게 볼 수 있고, 개별 주식 단에서는 반토막도 자주 볼 수 있으니까요.)

단지 가격이 하락했다고 해서 거품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그럼 우리의 논의는 단지 ‘향후 6개월 이내에 가격이 하락할 가능성이 얼마나 됩니까?’라는 논의와 다를 게 없어지기 때문에, 추가 기준이 좀 필요합니다.

가격이 하락하고 회복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야겠지요. 1987년 블랙 먼데이 때는 다우지수가 -22%, S&P500지수가 -20%로 급락했습니다. 전고점을 회복하는 데에는 1.5~2년 정도가 걸렸습니다. 분명 엄청난 충격을 준 사건이었고 많이 회자되는 사건이지만 이건 그냥 ‘사건’이라고 불릴 뿐, ‘거품 붕괴’라고 불리지 않습니다. 3년 이내에 전고점이 회복되면 거품이 아니었다고 넘길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테크버블과 2008 금융위기 때는 전고점 회복에 약 6년이 걸렸습니다. 코로나 때는 S&P500이 고점 대비 -34%까지 하락했지만 6개월 정도 후에 전고점을 갱신했습니다. 코로나 역시 버블 붕괴로 불리지 않습니다.

주가(지수)가 고점 대비 30% 이상 급락하고, 회복에 3년 이상 걸렸다. 이걸로 충분할까요? 거품 붕괴라는 건 금융시장을 넘어선 사회 현상입니다. 비트코인은 2017년 말 고점이 붕괴되고 전고점 회복까지 약 3년이 걸렸습니다. 분명 비트코인은 2018년에 심한 하락을 겪었지만, 거품이 붕괴되었다고 표현하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거품이 붕괴되었다’라고 부르려면, 단기 가격의 등락뿐만이 아니라 전반적인 사회 구조에도 영향을 미쳐야 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금융시장 느낌으로 다시 표현하자면 ‘가격 급락이 펀더멘털 변화를 야기할 타격을 주었는가’라고 할 수 있겠죠.

자, 거품인가 아닌가를 가르는 기준을 다시 정리해보겠습니다. 1) 주가(지수)가 고점 대비 30% 이상 급락, 2) 전고점 회복에 3년 이상 소요, 3) 가격 급락이 펀더멘털 변화를 야기. 현재의 인공지능 관련 주식들이 이 세 조건을 만족한다면 현재의 가격은 훗날 ‘거품이었다’라고 불리겠죠.

그래서 거품인가?

하나씩 살펴봅시다.

1) 주가(지수)가 고점 대비 30% 이상 급락할 수 있는가?: 있다, 당연히

이건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주식이라는 자산에 투자하고 있는 이상, 거품이건 뭐건 따질 필요 없이 언제나 염두에 두어야 하는 사실입니다. -30%든 반토막이든 언제나 날 수 있습니다. 그걸 고려하지 않는 사람은 주식에 투자할 자격이 없습니다. (며칠 전 어디선가 “알트코인 3x는 안전하다고 생각했는데 청산당했어요”라는 글을 봤습니다. 재밌는 세상입니다.)

2) 급락한다면 회복에 3년 이상 소요될 것인가?: 펀더멘털이 멀쩡하다면야 3년까지는...

어떤 급락이냐에 따라 다르겠지요. 주가만 혼자서 멀리 갔다가 돌아오느냐, 펀더멘털이 붕괴되면서 주가도 함께 빠졌냐에 따라 다를 겁니다.

펀더멘털이 멀쩡한데 주가만 멀리 갔다면, 예를 들어 PER 30배가 적정한데 ‘평균적으로’ 60배씩을 받고 있다가 모종의 이유로 (금리 인상이든 테러든 전염병이든 기상이변이든) 30배로 회귀한다면 주가는 반토막이 나겠지요. 그렇지만 펀더멘털이 멀쩡하다는 가정이었으니 회사들은 예견된 성장을 이루어내고 주가는 회복할 수 있습니다. 앞서의 정의에 따르자면 반토막난 이후에 고점을 회복하려면 2배 상승해야 하는데 3년에 2배는 힘들어 보이긴 하네요.

그러므로 “현재 예상치가 과도하지 않다고 가정했을 때, 주가가 적정 밸류에이션 범위에 들어와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바꿔보면 대답이 명확해질 것 같습니다.

주요 기업들의 12개월 선행 PER을 보자면 마이크로소프트, 알파벳, 아마존 등이 약 30배 수준이고 메타는 22배입니다. 오라클과 엔비디아 역시 20배 후반입니다. 1990년대 말 닷컴버블 때와는 비교할 것도 없고, 오히려 1960년대 말 ‘니프티 피프티(Nifty Fifty)’보다도 더 낮은 수준입니다. 물론 PER이 세 자릿수인 기업이 일부 있긴 하지만 그건 그 기업들의 개별적인 문제이고, 그런 기업들은 어느 시대에나 존재하기 때문에 일부 기업의 수백 배 PER이 버블의 논거가 되지는 못합니다.

이 기업들의 적정 PER이 15배라고 생각한다면 지금부터 반토막도 충분히 가능하고, 회복에 3년 이상 걸릴 수도 있겠습니다. 여기는 각자의 대답이 다 다르겠지요.

3) 주가 급락이 펀더멘털 변화를 야기할 수 있는가?: 있다

이게 3년 전과 지금 결정적으로 다른 지점입니다. 빅테크들이 자체 자금으로 CAPEX를 하고 있다면 주가가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그러나 지금은 조금씩 외부 자금이 수혈되는 중입니다. 외부 자금으로 투자를 진행하다가 금리 인상이든 은행 파산이든 연준 의장 교체든 정부 파업이든 관세든 모종의 이유로 유동성이 마르고, 은행의 대출 태도가 나빠지고, 채권을 통한 자금 조달이 안 되어 설비투자가 어려워지면 어떻게 될까요? 하이퍼스케일러 CAPEX에 의존하던 회사들의 매출액이 줄어들고, 그 회사에 의존하는 다른 회사들의 이익(전망)이 나빠지고, 그 회사들의 자금 조달이 또 어려워지겠죠.

시장에 구조적인 문제가 있느냐 없느냐를 볼 때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포지티브 피드백 루프(positive feedback loop)’의 존재입니다. 역사적으로 우리가 ‘버블’이라고 낙인찍었던 모든 구조에서 포지티브 피드백 루프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고전이 된 튤립 투기를 볼까요? 튤립 구근은 새로운 튤립을 낳을 수 있습니다. 튤립의 밸류에이션은 미래에 낳을 수 있는 튤립 가치의 현재가치 할인으로 구할 수 있겠죠. 미래에 튤립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가 현재의 높은 튤립 구근 가격을 정당화합니다. 미시시피 버블이나 사우스 시(South Sea Company) 버블은 어떤가요? 전환사채 발행 차익을 기업의 이익으로 기재할 수 있는 회계 방침 덕에, 높은 가격에 신주를 발행할수록 회사의 이익이 더 늘어나고, 늘어난 이익을 기반으로 더 높은 가격에 신주를 발행할 수 있었습니다. 테크버블이나 2008 금융위기는 널리 알려진 사례이니 굳이 다룰 필요도 없겠지요.

금융시장에서는 완전한 관찰자는 존재하기 어렵습니다. 관찰자는 어떤 판단을 내리면서 시장에 참여하게 마련이고, 그러한 참여 행위는 시장에 새로운 변화(정보)를 낳고, 관찰자는 그러한 새로운 정보를 바탕으로 새로운 판단을 내립니다. 이러한 영향은 서로를 강화하기도 하고 약화하기도 합니다. 시장이 온건할 때는 참여자들이 각자 독립적인 판단을 내리면서 치우침을 완화해주는 ‘네거티브 피드백(negative feedback)’이 발생합니다. 그 반대로 타인의 행동에 영향을 받아 나도 그 행동을 따라 하는 포지티브 피드백도 상당히 자주 발생하는데, 참여자들이 스스로의 행위가 남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모르면서 포지티브 피드백이 누적되면 취약한 구조가 되고, 언젠가는 부러집니다. 그렇게 부러진 결과를 우리는 ‘거품이 붕괴되었다’라고 부릅니다.

그러므로 현재 시장이 거품인가를 판가름하는 가장 중요한 질문은 “포지티브 피드백 루프가 존재하는가?”가 될 것입니다.

현재 AI 분야로 대입해보자면 이런 식이 되겠죠. 인공지능 기업들의 가격이 오른다. 투자자들은 인공지능의 미래가 밝을 것이라고 판단한다. 투자자들의 낙관적인 판단을 기회 삼아 기업들이 자금 조달에 나선다. 기업이 조달한 자금으로 대량의 투자를 한다. 산업 전체에 활기가 돈다. 관련 기업들의 이익(혹은 매출액)이 늘어난다. 투자자들의 낙관적인 판단이 옳았다는 확신이 든다. 가격이 오른다. 높은 가격에도 투자한다. 기업들은 또 자금 조달을 하고, 그 자금으로 투자한다.

현재 시장에 이런 구조가 형성되어 있나요? 어떤 지점을 보고 있는가에 따라 대답은 달라지겠습니다. 확실한 건 3년 전에 비해서는, 그리고 작년에 비해서는 이런 구조가 늘어나 있습니다.

문제는 이게 버블을 붕괴시키는 트리거는 아니라는 점이죠. 앞서 순환 구조에 대해 이야기하며 말씀드렸듯, 이런 구조는 거품이 터졌을 때 낙폭을 더 키우는 요인이 됩니다. 불안감을 가중시킬 수는 있되, 그 자체로 붕괴의 트리거는 아닙니다.

이런 구조가 형성되었을 때 가격 상승은 더욱 가팔라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파티는 마지막이 가장 화려하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파티의 1부는 분명 끝난 것 같습니다. 그러나 2부가 이제 갓 시작했는데 퇴장했다가는, FOMO를 느끼다가 막장에 다시 파티장으로 돌아오는 우를 범할 수 있습니다.

거품 붕괴의 트리거는 AI가 거품이라는 주장 자체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최근에 논의되는 감가상각 내용연수나 매출채권은 상당히 (문제를 제기한 주체의 명성에 비하면 더욱) 지엽적인 문제입니다. 감가상각이나 매출채권으로 이익을 부풀리는 회사는 현금흐름이 부족하다는 공통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하이퍼스케일러들은 굳이 이익을 부풀릴 필요가 없습니다. (오픈AI같이 영업현금흐름이 부족한 회사는 예외입니다.) 감가상각으로 이익을 부풀린다 하더라도 그 효과는 몇년 후에 사라집니다. 설비투자가 동일하다 가정하고 3년 상각을 5년 상각으로 늘리면 2년 후에 회계상의 비용은 동일해집니다. 매출채권은 간단하게 매출액 대비 비율, 매출채권회전율 지표가 나빠지지 않으면 문제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매출채권을 깊게 파고 들어갈 수 있다면 다른 이야기가 되겠지만 외부자에게 그렇게까지 정보가 공개되지는 않습니다.)

인공지능 필드의 ‘구루’들이 가끔 뱉는 우려 발언들도 시장에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얀 르쿤이 LLM의 한계에 대해 이야기한 건 물론 옳은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이 발언을 LLM이 한계에 도달했고 이제 거품이 붕괴될 거라고 받아들이는 건 과한 해석입니다. 트랜스포머 구조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LLM의 한계를 당연히 알고 있고, 우리가 생각하는 지능에 가까이 가기 위해서는 월드 모델이 필요하다는 점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엔비디아가 피지컬 AI를 차세대 동력으로 강하게 주장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LLM의 한계, 그리고 로봇이 보여주는 부족한 모습들은 ‘AI 거품’이 아니라 ‘AI 업계가 아직 할 일이 엄청나게 많이 있다’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다양한 주장과 오해들에 시장이 흔들린다는 건 오히려 좋은 신호일 수 있습니다. 가장 무서운 상황은 거품론이 아무리 제기되더라도 일축하고 가격이 상승하는 상황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미국 행정부 일각에서 나온 ‘AI 기업들에 대한 구제금융은 없다’라는 발언은 좋은 립서비스였습니다. 시장에서 스스로 자중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준 것이니까요.

정리하자면 거품의 전반적인 진행 과정에서 1단계는 지났습니다. 거품이 아니라고 쉽게 말할 수 있는 초입 단계는 지났습니다. 급락은 언제든 있을 수 있고, 회복에 시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거품론이 산재하고 사람들이 그 거품론에 반응해서 주가가 급락을 자주 경험하는 동안에는 세상은 실제로는 그보다 덜 위험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무엇보다 인공지능은 너무나 엄청난 변화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 버핏클럽의 모든 글은 특정 종목에 대한 매수·매도 추천이 아닙니다. 투자 판단에 대한 모든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귀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