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더 인사이트 5] 시장을 맞히려다가 시장의 먹이 된다
투자에 관심 높은 사람은 많지만 제대로 된 지식을 찾아 익히는 사람은 소수입니다. 게다가 지식을 쌓았다고 해서 곧장 성과로 연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먼저 금융시장 작동 원리를 이해해 '금융 기초 체력'을 다져야 합니다. 이를 위해 뉴욕 월가에서 수조 원 규모의 채권·알고리즘 트레이딩을 담당했던 필자가 금융시장은 어떻게 작동하고, 어떤 변화를 겪는지, 다가올 트렌드는 무엇일지 독자 여러분과 함께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 버핏클럽
처음 월가 트레이딩 플로어에서 커리어를 시작했을 때, 필자는 이곳에 속한 사람들에겐 금융시장을 예측하는 숨겨진 비법이 있다고 생각했다. 매번 수억 달러를 움직이는 기관 트레이더들이 쳐다보는 수많은 모니터 위에는 복잡한 숫자와 온갖 그래프가 정신없이 얽혀 있었고, 이해할 수 없는 용어를 늘어놓으며 시장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하는 얼굴에는 확신이 비쳤다. 금융의 중심인 월가에 들어가겠다는 꿈을 가지고 오랜 시간 동경해 왔던 모습이었다. 그 장면의 일부가 되어 시장의 숨겨진 언어를 배우게 되었다는 사실에 필자는 묘한 고양감마저 느꼈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 점차 일을 배워가며 블룸버그 터미널에 입력할 ‘증권 주문’ 같은 명령어가 손가락 수를 넘길 즈음에도 여전히 필자의 눈에는 시장의 미래를 예측하는 마법은 그 작은 실마리조차 보이지 않았다. 플로어 위 시니어 트레이더들이 나누던 암호와도 같았던 대화 내용은 그저 매일 처리해야 할 업무의 모음일 뿐이지, 시장의 움직임을 예측하는 내용과는 거리가 멀었다. 시간이 한참 지난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더라도, 그곳엔 예측의 비법 따윈 없었다. 그들은 시장을 이기려는 싸움이 아닌, 기준을 지켜나가는 싸움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 어느 누구도 시장의 등락에 베팅하는 경우란 없었다. 거래를 진행하다 증권 포지션이 잡히기라도 하는 때에는(증권을 보유하든 공매도를 하든), 모두가 그 포지션의 가격 변동 리스크를 어떻게 쪼개고 없앨지만 고민하기 일쑤였다. 그들은 시장이 어디로 흐르든 영향을 받지 않는 중립을 지독하게 추구했다. 큰 포지션을 쌓아 시장을 멋들어지게 이기며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그런 영화와도 같은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필자가 가졌던 ‘월가 트레이딩 판타지’는 그렇게 허물어졌다. 인터넷 게시판에서 뜨는 개인 투자자들의 투자 무용담이 더 과감해 보일 정도로 월가의 트레이더들이 시장을 대하는 방식은 지독하게 사무적이었다.
트레이더들은 몇 대의 모니터에 블룸버그 터미널부터 사내 리서치, 그리고 온갖 채팅창까지 띄워두고 시장의 모든 순간을 관찰하는 데 집착했다. 점심을 먹다가도 시장에서 급격한 움직임이 나타나 울리는 경고음을 들으면 손에 든 샌드위치를 팽개치고 무슨 일이 일어났나 분석하기에 바빴다. 누구보다 시장을 가까이서 살피는 트레이더들이 도대체 왜 포지션이 쌓이는 것을 두려워하고 시장을 이기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지, 시장의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수많은 기회를 왜 잡으려 하지 않는지 이해하게 된 순간은 그로부터 1년이란 시간이 더 지난 뒤에야 찾아왔다.
“시장은 섣불리 예측하는 자의 돈을 이해하는 자에게 옮긴다.”
금융시장은 예측이 수익으로 전환되는 공간이 아니었다. 통신 기술의 발달로 정보는 빛의 속도로 확산되고 있었고, 감추어진 정보를 캐낸다거나, 얄팍한 지식으로 시장을 예측해 수익을 내고자 하는 사람들은 멸종을 면치 못했다. 예측은 실패했을 때 너무나 비싼 비용을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시장은 ‘눈먼 기회란 없다’라는, 철저한 자본의 논리로 움직이는 장소였다. 수익성이 보장된 정보는 개인의 손에 들어오기 전에 이미 불특정 다수의 시장 참여자에게도 공유되었다. 내가 참신하다고 생각했던 투자 전략 또한 이미 그 분야에 집중하여 오랜 시간 공들인 사람들이 선점했던 방법의 “하위 호환”일 뿐이었다. 날카로운 예측을 통해 시장을 이겨보겠다는 얄팍한 생각은, ‘돈 냄새 나는 기회는 당신만 노리는 게 아니다’라는 논리 앞에 너무나 쉽게 깨어져 버렸다. 이 때문에 천문학적인 돈을 움직이는 트레이더와, 그들의 거래상대방인 기관투자자는 미래를 쉽게 예측하려 들지 않았고, 시장보다 자신이 더 많이 안다는 섣부른 착각을 항상 경계했다.
내가 아는 걸 모두가 안다는 당연한 명제로 인해 금융시장은 균형 가격을 형성한다. 균형 가격은 모두의 믿음이 합쳐진 결과이기 때문에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세상에서 벌어지는 무수한 사건 사고로 인해 시장이 믿고 있던 균형에 금이 가는 순간, 새로운 깨달음을 얻은 모두는 같은 방향을 향해 전속력으로 뛰어간다. 그래서 시장은 움직이기 시작하면 극단적으로 움직인다. 시장을 이겨보겠다는 생각은, 자본의 논리가 만들어낸 불변의 법칙을 거스를 정도로 압도적인 가치를 만들어내겠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래서 월스트리트 금융시장에서 밥 벌어먹는 사람들은 섣부르게 시장의 움직임을 예측하지 않았다. 필자 또한 프로의 세계에 발을 들이기 전, 개인 투자자의 신분으로 뉴스나 차트 분석 따위에 의존해 주식과 외환을 사고팔다가 투자금을 날려본 경험이 있다. 투자자들이 어떤 시야에서 시장을 판타지화하고 무슨 기대를 마음속에 품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에, 월가에서 깨닫게 된 시장의 본질은 그야말로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그 경험과 놀라움에서 얻은 배움을 한 권의 책으로 엮은 것이 이번 신간 《인사이더 인사이트》다. 이 제목을 버핏클럽 연재 칼럼 명으로도 사용했다.
《인사이더 인사이트》는 투자 여정에서 성공하는 법을 함께 배워보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쓰였다. 그 성공은 단편적인 전략이 아닌, 시장의 본질을 배우는 데에서 시작한다. 그렇기에 이 책은 투자 전략이나 공식을 알려주지 않는다. 대신 투자법을 배우기에 앞서, 투자의 무대인 금융시장이 어떤 곳인지 알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책이다. 금융시장을 구성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 본질을 들여다 보고, 그들의 경험 속에서 우리가 함께 되새기면 좋을 교훈을 차분히 찾아가는 여정을 독자들과 함께 떠나고자 한다.
운동을 오랫동안 잘 수행하기 위해서는 내 몸의 구조부터 익혀야 하듯, 평생 투자를 할 투자자는 자신이 활동할 시장의 구조를 먼저 이해해야 성공적인 투자를 할 수 있다. 우리는 종종 돈을 좇다 길을 잃는다. 이 책은 돈보다 시장을, 시장보다 사람을 이해하려 했던 기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