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의 주식 공부 33] 재귀성: 가격은 어떻게 현실을 바꾸는가
주식 투자자가 알아야 할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지식을 담아 ‘최소한의 주식 공부’를 연재합니다. 주식이라는 자산의 근본적인 실체에서 시작해, 의사결정의 주요 원칙과 피해야 할 함정에 대해 홍진채 라쿤자산운용 대표가 독자 여러분과 함께 고민합니다. ― 버핏클럽
오늘은 재귀성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가격이란 무엇인가
투자를 진지하게 공부하는 사람들은 ‘가치’에 대해서 신중하고 정교한 논의를 펼치지만, ‘가격’에 대해서는 그다지 깊이 있는 논의를 하지 않습니다. 가격이란 그저 시장의 노이즈, 불확실한 것, 시장 비효율성의 상징, 기다리다보면 언젠가 가치에 ‘수렴’하는 그 무엇 정도로 논의되고 맙니다.
가격이란 뭘까요? 가격은 교환 비율입니다. 인류 사회는 많은 기간 동안 ‘돈’을 거래의 매개로 삼아왔습니다.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물물교환이 아닌 ‘돈'이라는 매개체로 거래를 해왔습니다. 가격이란 이런 재화·서비스와 돈의 교환 비율입니다.
그 교환 비율은 누가 정하는 걸까요? 힘 있는 누군가가 강제할 수도 있고, 거래의 당사자들이 자유롭게 정할 수도 있습니다. 주식의 가격은 대부분의 경우 시장 논리, 즉 거래 당사자들이 그때그때 부르는 값에 따라 정해집니다.
주식의 가격이라는 것은 주식이라는 재화와 돈의 교환 비율이겠죠. 만 원이라는 가격에 주식이 팔렸다는 건, 만 원보다 주식 한 주가 더 가치 있다고 느끼는 누군가와, 주식 한 주보다 만 원이 더 가치 있다고 느끼는 누군가가 거래에 합의한 결과입니다.
여기 가치라는 단어가 등장했습니다. 가격이란 결국, 가치와 동떨어진 랜덤하게 움직이는 무언가가 아니라, 가치에 대해서 상이하게 판단하는 여러 이해당사자들 간의 거래의 결과라는 겁니다.
가격을 바라보는 이분법적 시각 - 소위 ‘가치투자’의 관점에서 가격이란 그저 노이즈일 뿐이라는 시각과, 소위 ‘효율적 시장 가설’의 관점에서 가격은 모든 정보의 총합이므로 그 자체로 가치를 온전히 반영한다는 시각 - 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습니다.
가격은 가치 그 자체도 아니고, 가치와 전혀 상관없는 무언가도 아닙니다. 가치를 바라보는 각 행위 주체들 간의 상이한 판단의 결과인 겁니다. 가치를 신봉하는 것도, 도외시하는 것도 모두 진실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합니다. 여러 행위자들이 어떤 근거로 가치를 매겼느냐를 살펴봄으로써 우리는 가격의 진실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습니다.
재귀성
합리적 인간이라는 관점에서 인간은, 취득할 수 있는 모든 정보를 취득하고 본인에게 최적의 이익이 되는 행동을 한다고 봅니다. 두말할 필요 없이 이는 진실과는 거리가 멉니다. 최소한 그런 척은 할 수 있지만, 인간은 그렇게 합리적으로 사고할 수 없습니다. 사실, 합리라는 말 자체가 많은 경우 착각에 불과합니다. 인간은 합리적이기보다는, 합리화하기를 좋아합니다.
행동경제학은 기존의 합리적 인간 가설에서 벗어나는 인간의 행동 양식을 여럿 찾아냈습니다. 인간은 신중하게 모든 정보를 모으고 분석하기보다는, 빠르게 행동하고 그 행동을 정당화하는 데에 능합니다. 독립적으로 사고하기보다는 주변 사람들의 움직임에 많은 영향을 받습니다. 장기적인 미래, 다양한 가능성을 전망하기보다는 단기적인 움직임에 반응하고 결과가 필연적이었다고 암묵적으로 가정합니다.
아마도 진화 과정을 거치면서 그런 판단 양식이 생존과 번영에 유리했으니까 이렇게 된 거겠죠. 합리성의 정의를 조금 비틀자면, 결국 이런 행동이 생존에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니, 이것은 비합리성이라고 부르기보다는 다른 차원에서의 합리성이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다시 가격 이야기로 돌아가봅시다. 가격을 결정함에 있어서, 다시 말해 어떤 주식 자산의 가치가 어느 정도냐를 가늠함에 있어서 인간은 어떤 식으로 판단할까요? 합리적 인간을 가정한다면 신중하게 해당 기업의 모든 정보를 취합하고, 이 기업이 주주에게 장기적으로 돌려줄 수 있는 몫을 계산하여 가치를 구하겠지요. 그러나 실제로 그런 과정을 거치는 투자자는 백 명 중 한 명도 찾기 어려울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변의 분위기에 휩쓸리거나, 기업에 별 영향을 미치지도 않는 거시경제 변수에 흔들리거나, 내가 매입한 시점 이래 몇 퍼센트의 수익이 났다거나, 차트의 특정 모양새가 어떻다거나 하는 이유로 가치를 매기고 거래에 나섭니다. 이런 행위에 ‘가치를 매긴다’라는 표현을 붙이는 일 자체가 어색하기도 합니다.
여기까지는 많은 사람이 아는 내용입니다. 이렇게 ‘비합리적’인 이유로, ‘가치’와 상관없는 근거로 매매에 나서는 사람이 많으니 시장은 노이즈와 비효율성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니 ‘가치’를 신중하게 잘 계산하고 그 차이를 이용하면 수익을 낼 수 있다, 익숙하게 많이 들어본 이야기죠?
그러나 다시 잘 생각해봅시다. 가치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주식의 이면에는 기업이 있고, 기업이 장기적으로 주주에게 가져다줄 돈은 기업이 벌어들이는 이익에 있으니, 그것이 곧 가치라고들 많이 이야기합니다. 저도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이 명제 자체는 진실이니까요.
근데 기업이 벌어들일 돈이라는 게 정말 주변 행위자들의 판단과 무관한 걸까요? 오늘 오르락내리락하는 변화무쌍한 가격은, 오늘 이 주식을, 기업을 바라보는 시장 참여자들의 흔들리는 마음은 기업의 가치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걸까요?
없을 수도 있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게 재귀성입니다.

객관적이고 독립적인 행위자라는 착각
우리가 사물을 바라볼 때, 우리는 암묵적으로 내가 바라보는 행위가 그 대상의 ‘본질’에는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가정합니다. 내가 달을 바라보든 바라보지 않든 달은 그 자리에 있는 거죠. 눈을 감는다고 달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과연 그런가요?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생각해봅시다. 오늘 처음 만난 어떤 사람과 내가 앞으로 얼마나 친해질지 예측한다고 해봅시다. 이 예측의 미래는 행위자인 나의 행동에 독립적일까요? 내가 어떻게 행동하든 무관하게 우리는 각자의 정해진 본성에 따라 얼마나 친해질지 결정되어 있는 걸까요?
내가 호의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행동했을 때, 친절하게 호의를 베풀었을 때, 힘든 일을 참고 함께 견뎌냈을 때, 이 사람과의 관계는 달라지겠죠.
자본시장에서 자산의 가치라는 건, 자산에 내재된 독립적인 어떤 값이라고 단정 짓기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좋은 화장품을 파는 어떤 회사가 있다고 해봅시다. 이 회사가 상장사라면 다수의 투자자가 있을 테고, 그 투자자들 중 많은 사람은 회사가 내놓은 신제품에 관심을 갖고 사용해보겠죠. 회사는 비상장일 때보다 좀 더 쉽게 바이럴을 탈 수 있습니다. 기업의 가치가 관측자들에게 독립적이라면, 상장이거나 비상장이거나 기업의 가치는 동일해야겠지요. 그러나 이 사고실험에서 상장이냐 비상장이냐의 차이로 두 기업의 신제품 성공 가능성은 상이합니다.
좀더 본격적인 예를 들어볼까요. 어떤 회사가 재무 상태가 나쁜데, 획기적인 신제품을 출시하려고 한다고 합시다. 이번 대출만 연장되면 신제품을 출시할 수 있습니다. (시장에 대여자가 단 한 명뿐이라고 가정했을 때) 대여자가 회사의 신제품이 성공할 가능성을 낮게 보고 대출을 거절하면, 회사는 그대로 끝납니다. 반대로 대여자가 회사의 신제품이 성공할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고 대출을 연장해주면, 회사는 또 한 번의 기회를 얻게 되겠지요.
다른 대여자가 존재한다 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A라는 대여자가 연장을 거절한 건에 대해서 B라는 대여자가 심사를 할 때, “A가 거절했는데 내가 괜히 대출을 해줬다가 손실이 나면 더 쪽팔리지 않겠어?”라는 생각으로 B 또한 대출을 거절할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A가 대출을 연장해줬을 때, 그 행위 자체로 회사의 신제품이 유망하다는 신호일 수 있으므로, B 또한 회사에 새로운 대출을 제안할 수 있습니다.
자본시장에서 모든 참여자들의 행위는 크든 작든 다른 참여자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단지 2차 시장에서의 가격뿐만 아니라 기업이 실제로 사업을 영위하는 데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이러한 세계관에서 주변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기업 가치’라는 개념은 그 의미가 상당히 희석됩니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고 서로 신호를 주고받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는 재귀성의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1990년대부터의 꾸준한 부동산 가격 상승은 대여자들에게 ‘부동산은 안전한 담보’라는 인식을 심어줬습니다. 부동산에 쉽게 쉽게 대출이 승인되니까 사람들이 집을 쉽게 구매할 수 있게 되고, 주택 수요가 늘어나니까 가격은 꾸준히 상승합니다. 가격이 꾸준히 상승하니까 대여자들은 또다시 ‘부동산은 안전한 담보’라고 판단합니다. 사실은 그들이 안전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가격이 상승한 건데 말입니다.
시장에 한참 동안 가격 상승이 누적되면서 부동산 담보대출시장은 복잡한 파생상품으로 엮였고, 대출을 받아서는 안 될 대출자에게도 손쉽게 대출 승인이 났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누군가가 대출을 갚지 못하고, 어떤 펀드가 손실을 발표하고, 부동산 가격이 불안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펀드들이 자산을 빠르게 청산하려고 하자, 가격 하락이 가속화되고, 자산이 대거 상각되고, 금융회사의 손실이 커지고, 자금을 회수하고, 회사들이 고용을 줄이고, 실업자가 대량 발생하니까 담보대출을 못 갚는 사람이 더 늘어나고, 이런 식으로 시장이 붕괴되었습니다.
(실제로는 훨씬 복잡한 메커니즘이 존재합니다만, 재귀성을 이해하는 데에는 이 정도로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 MBS, CDO, CDS, 바젤2 같은 이야기를 오늘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세계관의 차이
재귀성에 대해서 한참 이야기를 하다 보면 높은 빈도로 마주치는 질문이 있습니다. “그래서 뭐가 달라지는 거죠?” “어차피 다 알고 있는 이야기 아닌가요?”
모르겠습니다. 다 알고 있는 이야기였는지는 차치하고, 뭐가 달라지는지 이야기해봅시다.
‘가치’라는 세계관을 가지고 가격을 바라보면, 가치라는 개념이 없을 때 대비해서 어떤 차이가 생기죠? 가격의 등락, 단기적인 변화 등으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서 생각해볼 수 있게 되죠. ‘싼 가격’, ‘비싼 가격’이라는 개념이 생깁니다. ‘가치 대비 싸게 사서 적정 가치에 도달했을 때 팔자’라는 투자 전략을 수립할 수도 있고요. (여기서 세계관이란 “동일한 팩트를 어떤 인과 모델로 해석하느냐”로 정의하겠습니다.)
가치 개념 없이 그저 가격만 바라보면, 가격의 변동만으로 가격의 미래를 예측하고자 한다거나, 혹은 가격이라는 건 그저 랜덤워크일 뿐이니 우리는 초과수익을 낼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도 있겠죠.
세계관이라는 건 그 자체로 확실하게 수익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이 시스템에서 어떤 세계관도 미래를 명확하게 예측할 수 없습니다. 다만 행동 양식이 달라질 뿐입니다.
세계관이라는 건 세상을 바라보는 필터입니다. 인간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없습니다. 단순히 하나의 사물을 바라볼 때에도 우리 두뇌는 꽤 적극적인 ‘해석’을 거쳐서 “이 사물은 무엇이다”라고 분류해냅니다. 어떤 현상을 볼 때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등을 판단할 때에는 훨씬 심하죠.
세계관이 어떠하냐에 따라 우리의 행동은 달라지고, 세계관이 우리를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습니다.
최근 ‘터보퀀트’라는 기술이 주목받으면서 반도체 주식들이 급락한 바 있습니다. ‘KV 캐시’라는, 인공지능의 엔진인 LLM을 작동시키는 데에 필요한 메모리 용량을 대폭 줄여줄 수 있는 기술로 알려져 있습니다. 지금까지 인공지능 밸류체인에서 메모리가 병목이었는데, 이 기술을 이용하여 메모리 소비량이 줄어들 수 있으니 이제 병목이 풀리고 메모리 가격이 급락하지 않겠냐는 논리입니다.
저의 개인적인 경험도 그러하고, 기술 분야에 있는 수많은 사람이 증언하지만, 그 논리는 명백하게 틀렸습니다. KV 캐시 용량을 줄일 수 있다면, 그렇게 아낀 공간은 LLM의 연산에 사용하거나, 더 긴 분량의 입력을 가능하게 하는 데(긴 컨텍스트 윈도우라고 합니다) 사용할 가능성이 월등히 높습니다. KV 캐시 압축은 메모리 구입에 들어가는 비용이 아까우니 절약해보자는 의도로 개발된 게 아니라,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수요에 어떻게든 대응하고자 하는 발버둥입니다. 캐시 압축은 매우 다양한 방면으로 연구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1년 전 논문을 굳이 이제서야?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논리가 틀렸다’가 아닙니다. ‘틀린 논리에 기반하여 주식을 내다 파는 사람이 엄청나게 많다’라는 겁니다. 단지 가격과 가치의 관점에서만 접근한다면, “기업 가치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이슈로 주가가 하락했으니 추가 매수” 같은 결정을 할 수 있겠죠.
재귀성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런 시나리오를 떠올려볼 수 있습니다. “이런 하찮은 논리에도 흔들릴 정도로 공부가 덜 된 사람들이 주식을 많이 들고 있다. 필연적으로 주식의 변동성이 커진다. 근데 이런 불안감은 대출 심사자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현재 인공지능 하이퍼스케일러들은 설비투자의 재원으로 타인자본에 상당수 의존하고 있다. 그런데 이 대출 심사자들이 ‘틀린 논리’일지라도 그에 따른 불안감으로 대출을 거절한다면 설비투자 속도에 제약이 생길 수 있다. 심지어 대여자들의 자금 원천이 신중한 기관투자자가 아니라 빠르게 자금을 회수하기를 원하는 개인 투자자들이라면? 연쇄된 공포가 펀드 환매를 낳고, 대여자들은 그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대출을 회수하고 추가 대출을 중지할 수 있다. 그런 상황이 다시금 투자자들에게 ‘대여자들이 대출을 꺼리는 걸 보면 무언가 안 좋은 일이 있나 보다. 주식을 팔아야겠다’라는 판단으로 이어질 수 있다.”
흥미로운가요? 미래가 어떤 식으로 펼쳐질지 모릅니다. 그러나 만약 두 번째 시나리오가 실제로 벌어졌는데 나는 첫 번째 세계관으로 의사결정하여 초기 하락 국면에서 자금을 계속 소진하고, 심지어 빚을 내서까지 매수에 나선다면, 이후에 파국적인 결말이 찾아올 수도 있습니다.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가치를 중시하는 투자 프로세스가 틀렸다는 이야기도 아니고, 가치 따위 신경 쓰지 말고 남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더’ 중시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반도체 기업들의 주가 향방에 대한 예측도 당연히 더더욱 아니고요.)
확장성 있는 유연한 세계관이 투자자의 생존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이야기입니다.
한국에는 아직 주식시장의 역사가 짧고, 주식 투자가 지금처럼 대중화된 것도 기껏 코로나19 이후입니다. 한국에 ‘수입’된 다양한 투자 기법, 원칙, 소위 투자 ‘철학’이라는 건 그 이면의 깊은 고민과 경험이 동행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척박한 한국의 투자 ‘철학’ 환경에서 재귀성이라는 개념은 세계관을 유연하게 만들어주는 데에 큰 도움을 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