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크셔 통신 3] 그들은 왜 화를 내지 않을까?

버크셔 해서웨이 그룹에서 근무하는 유일한 한국인인 필자가 바라본 워런 버핏은, 위대한 투자자이기 이전에 탁월한 경영자다. 그의 철저한 경영 방식은 투자 원칙과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체계로 이어진다. 버핏의 가치평가 원칙이 현장 경영과 기업 문화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살펴보며, 그가 왜 단순한 투자자가 아니라 성공적인 경영자인지 한국 독자에게 전하고자 한다. ― 버핏클럽

Getting your Trinity Audio player ready...

우리는 살면서 많은 문제를 겪는다. 대부분의 문제는 작게는 짜증을, 심각한 경우에는 분노와 원한을 자아낸다. 이러한 심리적 기제는 사적인 일상에서만이 아니라 회사 업무 같은 공적인 영역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기 쉽다. 특히 돈이 걸려 있는 업무라면 다급한 상황이 발생하거나 예상치 못한 상황이 생겼을 때 감정적으로 변할 가능성이 더욱 커진다.

당장 팀의 매출이 날아가게 생겼거나, 누군가의 실수로 급히 대처해야 할 일이 생긴다면 그걸 직접 해결해야 할 당사자 입장에서는 화가 나기 쉽다. 즉 예상치 못한 사건이 발생하는 순간 팀 분위기는 쉽게 감정적으로 변하고, 그러면 존중하는 분위기는 순식간에 와해된다.

따라서 회사 내에서 존중하는 분위기를 유지하려면 우선 다급한 상황이나 예상치 못한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는 구조가 필요하다. 아무리 사람을 가려서 잘 뽑아도 목에 칼이 들어오는 상황이 되면 타인에 대한 배려는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버크셔 해서웨이는 이런 면에서 매우 철저한 편이다. 갑작스럽게 예상치 못한 상황 때문에 회사나 팀이 크게 휘청이거나, “빨리빨리”식으로 해결하도록 압박하는 상황이 거의 벌어지지 않는다. 심지어 대부분의 회사에 존재하는 성수기와 비수기라는 업무 사이클도 버크셔에선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업무에 변수가 적고 예측 가능성이 높으니 팀의 분위기도 구조적으로 평온하게 바뀐다. 결과적으로 화내지 않는 조직문화가 만들어진다.

보험회사는 원래 평온한 사업이 아니다

혹자는 손해보험이나 재보험 회사는 워낙 안정적이라 애초에 예측 가능성이 높은 것이 아닌가 하고 오해하기도 한다. 물론 보험회사는 대외적으로 안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다. 하지만 보험사의 업무 자체가 안정적인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보험사는 세상의 온갖 위기와 변수에 가장 많이 노출되어 있는 비즈니스다.

버크셔를 비롯한 대형 재보험사들은 전 세계에서 발생하는 온갖 대형 화재와 태풍에 모두 얽혀 있다고 보면 정확하다. 사실 매주 업데이트되는 사내 공지만 읽어도 태풍이나 지진 등 버크셔의 보험이 얽혀 있는 자연재해가 지구 어디선가 거의 매주 한 번씩 발생한다.

리스크의 범위는 자연재해를 넘어 상선 침몰, LNG 화재, 코로나 휴업, 대형 법적 분쟁 패소, 인프라 공사 중단 등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중대형 사건을 포함한다. 온 세상의 다양한 리스크에 발을 걸치고 그 위험을 보증하는 것이 바로 재보험사와 대형 손해보험사다.

이런 사업은 회사의 존속 기간 동안 터지는 변수에 하나하나 휘둘리며 급박하게 대응하는 방식으로는 운영될 수 없다. 매뉴얼과 시스템이 없다면 보험회사가 흔들리기 전에 직원들의 정신이 먼저 지쳐버릴 것이다.

즉 버크셔에서 화를 내지 않는 문화가 정착된 것은 단순한 문화적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구조적인 뒷받침이 있기 때문이다.

어부들이 다가오는 폭풍을 대비하고 있다

버크셔가 서두르지 않는 이유

그럼 현장에선 그 시스템이 어떤 방식으로 돌아갈까. 버크셔에선 대부분의 업무가 아침에 갑자기 주어져 몇 시간 안에 끝내야 하는 식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보통 데드라인 최소 한 달 전에 업무가 주어진다.

예를 들면 석유화학 플랜트 하나의 보험 의뢰가 들어오면 구조공학팀(공학적 리스크), 과학분석팀(자연재해 리스크), 재무팀(재무 리스크) 등과 동시에 가치평가팀(감정평가 리스크)에도 리스크 평가 의뢰가 들어온다. 그리고 규모가 큰 계약일수록 최소 한 달 이상의 평가 기간이 주어진다. 한 달은 기본이고 몇 달씩 걸리는 경우도 많다.

이 구조에서는 갑자기 급하게 서두르거나 압박하는 상황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보험은 서둘러 이익을 내려 하면 10년 뒤 거대한 피해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빨리 매출을 올리는 것보다 리스크를 조금이라도 더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만약 고객이 재촉한다면 어떻게 될까. 예를 들어 빨리 보험에 가입하고 싶은데 자꾸 버크셔에서 뜸을 들이니 고객이 답답해 한다면? 많은 경우 고객은 다른 회사로 가버리면 그만이다. 경쟁사에 고객을 빼앗기기 싫으면 속도를 낼 수밖에 없는 것이 대부분의 비즈니스다. 하지만 버크셔의 보험은 이런 상황에서 조금 더 여유가 있다.

우선 조선소나 석유화학 플랜트 같은 초대형 매물에 맞춤형 보험을 제공할 회사 자체가 전 세계적으로 많지 않다. 즉 초대형 손해보험 시장은 완전 경쟁이라기보다 과점 시장에 가깝다.

또한 버크셔는 의도적으로 경쟁사와의 매출 경쟁에 깊이 들어가는 것을 꺼려한다. 고객이 충분한 리스크 심사 기간을 허용하지 않거나 지나친 리스크를 안고 있다면, 혹은 과도한 보험료 할인 경쟁에 빠지게 된다면 아무리 수익이 큰 건이라도 거절한다. 매출을 당장 올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애초에 리스크를 정확히 파악하고 좋은 가격에 보험 계약을 인수하는 것이다.

투자도 보험 언더라이팅도 조바심을 내서 서두르다 보면 그때야말로 버크셔의 플로트(Float, 보험사가 고객에게서 미리 받아 운용하는 자금) 전체를 위기에 빠뜨릴 수 있다.

또 다른 이유는 버크셔의 사업 구조다. 대부분의 재보험 회사는 보험 사업에서 꾸준히 매출을 만들어야 조직을 유지할 수 있다. 직원 급여와 운영비가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버크셔는 재보험 외에도 철도, 에너지, 도매 등 다양한 사업에서 이익을 창출하는 다각화된 그룹이다. 따라서 올해 마땅히 좋은 보험을 인수하지 못하더라도 잠시 물러서는 선택이 가능하다. 이러한 재무적 여유가 조직의 안정성을 만든다.

보험 계약이 들어오지 않는 시기에도 조직이 한가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평소에 다양한 상황에 대비하는 준비 작업이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재물보험에서 부동산을 평가하려면 해당 지역의 건설 비용, 리모델링 비용, 공사 기간 같은 자료를 미리 확보해 두어야 한다.

LA 소재 고등학교에 대한 화재보험 하나를 협상한다고 해보자. 캘리포니아 전체의 신규 건설 비용이나 고등학교의 평균 리모델링 비용, 건설 기간 등 학교 재건축과 관련된 모든 요소에 관해 미리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이런 데이터는 고객이 의뢰한 뒤 급히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최소 5년 이상의 자료를 미리 수집해 내부 데이터베이스에 축적해 둔다. 그 덕분에 갑작스러운 보험 의뢰가 들어오더라도 서두르지 않고 비교적 정확한 가치를 빠르게 산정할 수 있다.

조직에서 화를 내는 순간 존중은 쉽게 무너진다. 화를 내야만 조직의 긴장도나 의욕이 유지된다는 생각은 충분한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조직의 자기 변명일 수도 있다.

존중하는 문화를 유지하려면 결국 화를 내게 되는 상황 자체를 줄여야 한다. 그것은 탄탄한 재무 구조와 확고한 운영 원칙, 그리고 평소의 철저한 준비가 함께 갖춰질 때 가능하다.


※ 버핏클럽의 모든 글은 특정 종목에 대한 매수·매도 추천이 아닙니다. 투자 판단에 대한 모든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귀속됩니다.